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요 (문단 편집) == 역사 == 서요의 건국자 [[야율대석]]은 [[금나라]]가 끝내 [[북요]]마저 멸망시키자 기병 80~200여 명을 이끌고 몽골 초원으로 피신했다가, 요나라 최북방 주둔지 가돈에서 1만여 명의 부하들을 모아 1124년에 [[중가리아]] 지방으로 이주하여 다시 병력들을 끌어모았고, 발라사군으로 이주하여 과거에 요나라와 협력한 적이 있던 부족들을 규합하여 요나라를 재건한 후 1132년에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연호를 연경(延慶)이라 정했다. 1141년에 야율대석은 [[호라즘]] 샤 왕조를 정복하는 한편 금나라를 정벌하여 요나라를 복국시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143년에 사망했고, 그 뒤를 아들 [[야율이열]]이 이었는데, 인종 야율이열이 나이가 어려서 어머니인 [[감천태후]]가 섭정 자격으로 재위했고 감천태후는 연호를 함청(咸靑)으로 개원하고 임시로 7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야율이열이 성인이 되자 친정하였다. 1163년에 야율이열이 사망하자, 그 뒤를 아들 야율직로고(耶律直魯古)가 즉위하지만, 야율직로고가 나이가 어려서 고모인 [[야율보속완]]이 섭정 자격으로 재위했고 야율보속완이 반란으로 목숨을 잃자 나중에 [[야율직로고]]가 친정에 나섰다. 1208년 몽골 서부의 [[나이만]]족이 [[칭기즈 칸]]의 몽골초원 통일전쟁 중 패해 괴멸당했는데 이 때 목숨을 잃었던 타얀 칸의 왕자 [[쿠츨루크]]가 간신히 서요로 망명하게 된다. 당시 서요의 황제였던 야율직로고가 그를 받아주고는 '쿵쿠'라는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을 정도로 그를 우대한다. 그러나 쿠츨루크는 부마를 넘어 제위를 노리게 되었다. 당시 요는 요나라의 황족 야율대석이 그 지방의 모든 이민족을 누르고 중앙 아시아에 나라를 세운 후 대대로 그 곳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있었는데 쿠츨루크는 서요에게 지배받는 이민족 속국들의 저항 움직임을 부추기고 자립하게 만들었다.[* 이후 잠깐 [[중앙아시아]]의 패자가 되었다가 칭기즈 칸에게 멸망당하는 [[호라즘 왕국]]도 원래 서요에 복속되어 있었고 가장 강하게 저항하던 나라였는데 이 시기 자립해 무함마드 샤의 통치 아래 성장한다.] 그리고 쿠츨루크는 요나라 동쪽에서 나이만 난민들을 모아 다시 군대를 꾸리고 장인어른인 서요황제 야율직로고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쿠츨루크 반란군은 서쪽에서 서요에게 반기를 든 호라즘과 연계해 서요를 동서 양쪽에서 압박해 본국을 차지한 후 야율직로고를 폐위시키며[* 야율직로고는 폐위 후에도 명목상으로는 [[태상황]] 대접을 받으며 2년을 더 살다가 사망했다.] 오히려 자기가 왕위에 오르는 배은망덕한 행동을 저지르고 만다. 쿠츨루크는 왕위에 오른 뒤 선정을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대부분의 서요 백성들의 대부분이 믿고 있던 [[이슬람교]]를 탄압하는 등의 학정을 일삼았기 때문에 서요 백성들의 불만은 점차 커져갈 수 밖에 없었다.[* 서요의 지배층인 거란족은 불교도였지만 먼 지방에서 일으킨 왕조인만큼 거란족은 소수에 불과했다.] 당시 칭기즈 칸은 원수 나이만의 잔당이라 할 수 있는 쿠츨루크가 장악하고 있던 서요를 정복하기 위해 수도로 들어갈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서요 민심의 이반은 침략의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결국 결단을 내린 칭기즈 칸이 대군을 동원해 서요를 침공하였으며 쿠츨루크의 학정에 지친 서요 백성들은 오히려 침략자인 칭기즈 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칭기즈 칸은 정복한 땅의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제한을 거의 하지 않고 자유를 주었기 때문. 결국 쿠츨루크는 칭기즈 칸과의 전투에서 대패하였고 결국 도망치는데 곧바로 붙잡힌 후 목숨을 잃으며[* 쿠츨루크는 칭기즈칸에게 대패하고 살해당했기 때문에 서요의 '결제'라고도 불린다.] 거란족의 마지막 나라 서요는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떠돌던 일단의 거란인들이 이란 동남부의 [[케르만]]을 점령, 이슬람교로 개종한 후 몽골의 신하로서 14세기 초까지 그곳을 다스리기도 했다. 서요의 영토는 후일의 [[차가타이 칸국]]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