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 (문단 편집) === 조형물 === || {{{#!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6px" [[파일:서울대학교 정문 조형물.jpg|width=100%]]}}} || || {{{#ffffff '''서울대학교 정문'''}}} || * '''정문''' 정문의 '[[샤]]'자 조형물은 서울대의 '''대표 조형물'''이다. "'''국'''립'''서'''울'''대'''학교"의 초성 ㄱ, ㅅ, ㄷ에서 따왔다.[* 저 ㄱ, ㅅ, ㄷ를 합친 정문은 서울대 출신 [[유시민]]이 쓴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ㄱ, ㅅ, ㄷ의 약자는 계집, 술, 담배"'''라는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 혹은 ‘계집, 술, 도박’이나 ‘권력, 술, 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종종 담배 대신 ‘당구’를 넣기도 하고, 학생운동 전성기 때는 ‘[[공산당|공.산.당]]’의 이니셜이라는 농담도 있었다. 서울대의 등록금이 아주 쌌을 적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다니는 대학교'의 약자라는 말도 있었다. 초기에는 [[경성제국대학]]의 ㄱㅅㄷ(경성대)라는 비판도 있었다.] "진리를 찾기 위한 열쇠"를 상징한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자 정문의 필요성과 디자인에 관한 논의가 제기됐고, 1977년 [[:파일:서울대 정문 시안.jpg|3가지 시안]]이 상정돼 학생 여론을 조사했으나 모두 긍정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국 모든 안을 폐기하고, 미대, 공대, 환경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의 전문가 교수 9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휘장에 들어있는 '샤'마크를 활용하기로 합의를 보아 1978년에 지금의 정문이 탄생되었다.[[http://www.snu.ac.kr/news?bm=v&bbsidx=121320|#]] 이를 두고 학생 여론을 존중하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등 문제 제기가 이어지기도 하였고, 이 철제 구조물에 대해 “교문이 기발한 면만 강조돼 전체적으로 천박한 느낌을 풍긴다”거나 “독창적이고 참신한 맛이 나며 개방적인 이미지를 살린 것”이라는 등 당시 교수진과 학생들의 의견도 분분하게 나뉘었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29|관악의 수문장, '샤'대문]] 다만, 지금은 교표와 함께 가장 많이 쓰이고 애용하는 서울대의 상징이 되어버렸고[* 서울대 관련 물품에서 교표와 함께 제일 많이 쓰인다. 물론 간지는 교표가 더 나서 조금 밀리는 감이 없지 않지만. 연세대와 고려대는 오히려 상징동물들을 더 내세우는 편이라면 서울대는 상징인 백학을 거의 쓰지 않고, 교표, 샤, SNU로 정리된다.] '''샤라는 글자 자체가 서울대 내에서는 서울대를 상징하는 글자로 취급'''받는다.[* 그래서 동아리 이름이나 학교 앱 등 학교 관련된 것에 유난히 '''샤'''자가 많이 쓰이게 되면서(ex. 서울대 자부심을 샤부심이라고 칭하거나 서울대학교 학생 홍보대사 이름이 '샤'인(SHINE)인 것, 학식 메뉴를 알려주는 앱의 이름이 식'샤'인 것 등) 그런 부정적 여론은 없어졌다. 일종의 [[에펠 탑]]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도쿄대학]] 역시 [[아카몬]](1827년 준공)이라는 문이 도쿄대를 상징한다. 다만 서울대와 달리 정문은 아니다.] 이 상징물 아래로는 차도가 지나갔는데 양쪽 끝은 높이가 낮아 실제 진입로는 왕복 2차로에 불과, 정문 도로는 통학 시간에 항상 만원이었다. 또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는 정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도로 한복판에서 포즈를 취해야 했었다. 2022년 8월 진입로를 한쪽으로 이설하고 널찍한 광장이 조성됐는데 특히 포토존에는 [[:파일:지식인의 의자.jpg|지식인 의자]]라고 불리는 돌의자가 마련돼 명소가 되기도 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9499#home|#]] 정문 안쪽에는 수경 구간이 있는데 구도를 맞춰 사진을 찍으면 정문이 수면에 반사해 그럴 듯한 풍경이 나온다.([[:파일:서울대 정문 조형물 야경 후면.jpg|예시]]) {{{#!folding 서울대학교 정문 광장 [ 펼치기 · 접기 ] [[파일:서울대학교 정문 광장.jpg|width=800]] }}} 예전에는 누구나 쉽게 손잡이를 잡고 올라갈 수 있었으며, 실제로 새벽에 술먹고 이 조형물 꼭대기 위에 올라가 기타를 치며 아침이슬을 부른 사람도 있었다. 요즘엔 감시를 해서 올라가기 힘들다. 특히 [[https://www.yna.co.kr/view/AKR20110922057551004|2011년에 정문 법인화 반대 고공시위]] 이후, 철탑 측면 틈을 막아버려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 [[http://media.campuslife.co.kr/Media_View.asp?idx=19276|기사]] ---- || {{{#!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6px" [[파일:external/www.snu.ac.kr/pic17.gif|width=100%]]}}} || || {{{#ffffff '''쌍학'''}}} || * '''교조''' 교조와 관련해서는 '쌍학'이란 이름의 조형물이 문화관 앞에 있다. 그러나 두 마리의 학이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을 형상화한 일종의 미술 작품[* 미대 조소과 엄태정 명예교수가 제작했다.]이기 때문에 그리 동물로 보이지 않아모르는 이들은 그냥 지나치기 마련이다. 재학생 중에도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캠퍼스 내에 상징적인 조형물이 없다는 의견에 따라 개교 52주년이 되던 1998년에 제작되었다.[* 이 조형물을 처음 만들 때는 문화관 앞의 나무들을 베고 만든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형물이 들어서자 이내 학교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 조형물이 이 자리에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좌대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친필 '겨레와 함께 미래로'라는 글귀가 있다. 처음에는 금빛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녹이 슬어 지금의 푸르죽죽한 색깔을 가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