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대학교/관악캠퍼스 (문단 편집) ==== 종합화 구상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서울대 배치도.jpg|width=100%]]}}}|| ||<:> {{{#ffffff '''종합화 이전 서울대학교 배치도'''}}} || 통합 캠퍼스 구상은 1960년부터 제기되었다고 한다. 미국 대학과 체결한 계약에 의해 추려진 실태 조사단이 분산화된 캠퍼스 때문에 시설 중첩과 교육 기회 제한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 것. 그 후 캠퍼스의 통합을 골자로 하는 종합5개년 계획안이 꾸려졌으나 예산 부족과 단과대학간 갈등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 다시금 이 떡밥이 떠오른 것은 1968년 '종합10개년 계획안'이 수립되면서부터다. 당시 메인 캠퍼스 부지로는 공릉동, [[수원시]], [[안양시|안양]]읍 비산리[* 현재 [[안양시]] 비산동 일대로, 평촌신도시 북쪽 지역], 태릉, 동숭동 등이 떠올랐으며, 이 중 태릉은 조감도까지 발표될 정도로 유력한 후보지로 떠오른 적이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서울대 태릉캠퍼스 조감도.png|width=100%]]}}}|| ||<:> {{{#ffffff '''서울대학교 태릉캠퍼스 조감도'''}}} || 다만, 태릉은 협소한 부지, 교통 문제, [[육군사관학교]]와의 갈등 우려, 부동산 투기()로 인한 예산 부족 등의 다양한 이유로 취소되었고, 결국 1970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관악산]] 기슭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당시 정부가 한강 이남 지역 개발에 열을 올렸던 것도 관악으로의 이전에 힘을 실었다. 결정이 위원회나 총장이 아닌 대통령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이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반증해 주는 듯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