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여자대학교 (문단 편집) === 설립자 [[고황경]] === 바롬 '''고황경'''(1909~2000) 박사는,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이자 남대문교회의 장로인 고명우[* 농촌에서 의료 봉사도 하였다. [[6.25 전쟁]] 중 납북되었다고 한다.]의 딸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다. [[일제강점기]] 후반에 여러 친일단체에 가담하여 협조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37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의해 조직된 친일 단체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서 주관하는 순회강연에 참여하였다. 여자들의 금비녀·금가락지를 뽑아 일제의 국방비로 헌납하자는 전쟁협력단체 ‘애국금차회’가 조직되자 여기에 간사로 참여하였다. 1941년 조선 최대 민간 전쟁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이 결성되어 참여하였고, 이들은 조선의 청년과 처녀를 전쟁터와 '''[[정신대]]'''로 보내자고 주장했다.[* 고황경의 주요 발언: "어머니 자신이 먼저 황국신민([[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된 신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자장가 속에라도 나라의 관념을 넣어 주며 길렀으면 합니다. 즉 어머니의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매일신보, 1942.06.01 '임전보국단 부인대 주최 좌담회2-자장가 들릴 때에도 충군애국의 뜻 담아’)] 이럼에도 서울여대에서는 고황경의 호인 '''바롬'''을 바롬기념관, 바롬인성교육, 홍보바롬이, 바롬예비대학, 바롬국제프로그램, 바롬갤러리 등 각종 명칭에 적극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바롬''' 정신을 함양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까지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롬이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설립자의 호를 이 정도로 남발하는 것은 역사의식의 큰 결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기념하는 행보는 교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립자의 호를 기념하고자 하는 동문들의 의지가 큰 것은, 고황경 박사의 학장 재임 시절 학생들과의 깊은 유대와 관계 때문이다. 고황경 박사는 학장 재임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방을 매일 방문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는 등,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진정성이 학생들로 하여금 고황경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의지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친일행적을 포장할 수는 없다. 고황경 박사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선의 처녀들에게 근로[[정신대]]를 강조한 사람이다. [[여자대학교]]를 설립해 인성교육을 이끌어가고자 한 시대의 교육자가 시대의 비극에 놓인 당시 여성들에게 근로정신대에 가도록 권장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따라서 '인성교육'에 무시할 수 없는 친일 행적을 가진 고황경 박사의 호가 붙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