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특별시/정치 (문단 편집) === 지선 ===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1]],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2]],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6]],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7회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이겼고,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3]],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5]],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8회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정당이 이겼다.[* 5회 지방선거의 경우는 서울시장을 [[오세훈]]에게 넘겨주기는 했지만 민주당에서 구청장 25명 중 21명의 당선인을 배출했기 때문에 무승부라고 보는 관점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민주당세가 강했지만, 오히려 민주화 이후 지방선거에서는 생각보다 좌우 구도가 팽팽한 편이다.[* 민주화 이전엔 지방선거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고, 관선 시장들이 임명되었다.] 또 시장 선거의 경우 현직자가 도전자에 비해 대부분 우위를 점했다는 점에서 정치 성향과는 무관하게, 구관 및 현직을 선호하는 보수성이 어느정도는 존재하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1995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서울 모든 지역을 민주당이 올킬하면서 무려 21.68%p 격차로 이겼다. 초대 서울시장은 조순이였다. 구청장에선 서초구와 강남구에서 민주자유당이 이겼지만, 격차는 2.19%(서초구), 6.58%(강남구)로 그렇게 크진 않았다.[* 1995년 당시만 해도 강남권은 2020년대 현재만큼 보수색이 강하지 않았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강남권의 4개 지역구(강남구 갑/을, 서초구 갑/을)를 4개 정당이 1개씩 나눠가졌을 정도였다. [br] [[강남구 갑]] - [[통일국민당]] [[김동길]] [br] [[강남구 을]] - [[민주당(1991년)|민주당]] [[홍사덕]] [br] [[서초구 갑]] - [[신정치개혁당]] [[박찬종]] [br] [[서초구 을]] - [[민주자유당]] [[김덕룡]] [br]강남권의 보수색이 강해지기 시작한 것은 1996년, 15대 총선 이후 슬슬 나타나더니 2000년대 들어 선거 구도가 영호남 간의 지역대결에서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대결로 변모하고부터였다. 특히 부동산세 이슈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후 민주당 소속 노원구청장이 당선무효가 되면서 노원구청장은 자유민주연합이 차지했고 이후에도 용산구, 동대문구, 중랑구, 관악구, 강동구의 구청장들이 민주당을 탈당하거나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합당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으로 입당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강남구와 서초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민주당이 이기면서 9.47%p 격차로 민주당이 이겼다. 참고로 당선자는 바로 노무현 탄핵 소추 이후 잠시 권한대행 체제를 했던 [[고건]] 前 국무총리였다. 다만 구청장에선 서초,강남,강동에 노원구, 광진구까지 내줬다. 서초와 강남은 20%p 이상 격차로 꽤 컸고[* 다만 당시엔 서초구가 강남구보다 더 격차가 컸다.], 노원구는 약 4.7%p 격차였다. 그리고 동작구는 자민련이 차지했다. 하지만 재보궐선거로 용산구, 은평구를 한나라당이 차지했다. 연이어 동작구청장도 한나라당으로 입당하였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관악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이기면서 9.26%p 격차로 한나라당이 이겼다. 참고로 당시 이긴 후보는 바로 [[제17대 대통령 선거|17대 대선]] 때 서울에서 과반수 득표를 한 [[이명박]]이였다. 하필이면 한일월드컵 시즌에 치러져서 투표율이 낮았던 게 그 이유였다. 구청장도 중구, 성동구, 관악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한나라당에 내줬다. 이후 2004년 재보궐선거 때 중구청장도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전국 판세를 따라가면서 서울에서도 한나라당이 무려 33.74%p 격차로 이겼다. 구청장선거에서도 역시 한나라당이 올킬하였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경상남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김두관]]. 사실상 민주당 후보였다.], [[인천광역시]], [[강원도]]를 당시 야권이 차지하고, [[부산광역시]]에서도 45%로 선방하는 가운데, 서울에서만큼은 중구, 용산구, 양천구,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영등포구에서만 이겼는데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불과 0.6%p 격차로 이겼다. 당시 한명숙 후보가 꽤 논란이 있어서 강북에서 부진한데다[* 강남3구를 제외하고도 겨우 10만표 격차를 벌렸다. 격차는 겨우 3%p], [[강남3구]]가 결집하면서 역전패했다. 물론 구청장에선 강남3구와 중랑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민주당이 이겼다. 특히 송파구에선 불과 3.63%p, 중랑구에선 0.31%p 차이로 민주당이 석패했으며 일부 지역은 한나라당과 보수 무소속 후보 간의 분열까지 겹치면서 민주당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중구청장으로 당선된 박형상이 당선무효가 되면서 다시 재보궐선거가 치러졌고 이후 중구청장을 한나라당이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2011년 오세훈 당시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고 난 뒤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고[* 이때 당에선 홍준표 당시 대표가 한사코 사퇴를 말렸으나 본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리고 이후 재보궐 패배 여파로 한나라당이 비상대책위 체제로 넘어가면서 홍준표 역시 얼마 못가 당 대표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래서 내가 사퇴하지 말라고 했잖아--], 결국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참고로 당선자는 前 서울특별시장이였던 [[박원순]],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이겼으며, 격차는 7.21%p였다. 이로써 13년만에 민주당계 후보가 서울 시장직을 탈환하게 된다. 다만 양천구청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추재엽 후보가 승리하면서 양천구청장을 한나라당이 탈환했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세월호 참사]] 이후 치른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이기면서 13.1%p 격차로 이겼다.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졌던 지역에서도 많이 격차가 나봐야 9.28%p(강남구)로 해당 지역에서도 꽤 선전을 했다. 이로써 박원순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였다. 다만 구청장 선거에선 새누리당이 강남3구와 중구, 중랑구청장을 수성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양천구청장은 다시 새정치민주연합이 가져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모든 지역에서 올킬을 함으로써 무려 29.4%p 격차로 이겼다. 이로써 박원순 후보는 3선에 성공하였다. 구청장선거에서도 민주당이 공천 실책을 한 서초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이겼다. 그나마 그 서초구도 11%p 정도 격차였다. 하지만 2020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박원순 성추행 사건|모종의 사건]]으로[* 성추행 사건이라고 흔히 알려져있으나, 아직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세상을 떠나면서, 이에 분노한 민심과 [[LH 사태]] 등이 겹쳐[* 사실 재보궐 이슈가 떠오를 무렵만 해도 여론조사상 팽팽했으나, LH 사태가 터지면서 확 뒤집어졌으니 LH 사태가 선거엔 결정적이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40% 미만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쳐 참패했다. 특히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1~2% 정도 낮은 비슷한 투표율이 나왔고, 지난 4번의 선거에서 연승을 해서 조직력을 깔아놓은 상황이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결국 이 여파가 이어져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다시 국힘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고 구청장과 의회까지 [[국민의힘]]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10여년만에 정치 구도가 뒤집혔다. 다만 8회 지방선거의 경우 대선 직후에 치러진 허니문 선거라 그 영향을 받기도 해서 윤석열 정부 지지율이 하락한 이후부턴 국힘도 다음 선거의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