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특별시/정치 (문단 편집) === 총선 === 총선에서는 전쟁이란 특수상황이나 전쟁 직후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2대 총선]]과 [[제3대 국회의원 선거|3대 총선]]에서 무소속이나 자유당이 유리했던 경우를 제외하면[* 애초에 민주당이란 간판 아래 여러 전신 세력들이 모여 본격적으로 창당된게 1955년이다.], 민주화 이전엔 대부분 민주당계가 유리했다. 그나마 [[제6대 국회의원 선거|6대 총선]], [[제7대 국회의원 선거|7대 총선]], [[제8대 국회의원 선거|8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이 1~2석은 먹었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9대 총선]], [[제10대 국회의원 선거|10대 총선]], [[제11대 국회의원 선거|11대 총선]], [[제12대 국회의원 선거|12대 총선]]에서는 [[중선거구제]]의 영향으로 민주공화당과 민주정의당도 2등 당선으로 제법 의석을 획득했다. 독재정권의 관권선거가 강하게 작용하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세가 강고했다는걸 알 수 있다. 오히려 민주화된 이후 정계 개편 등을 거치면서부턴 서울도 경합우세 정도 지역이 되는데, 특히 강남3구가 점점 보수화되기 시작하는게 이때쯤부터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13대 총선]] 이후 3당 합당으로 서울의 보수정당 의석이 많아진 경우가 있었고 [[제14대 국회의원 선거|14대 총선]]에서도 보수정당이 3분의 1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으며 [[제15대 국회의원 선거|15대 총선]]에선 당시 김영삼의 신한국당 돌풍과 야권 분열로 인해 보수정당이 서울 의석 과반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계파적으로는 YS 후신계들이 보수정당내 주류를 차지했을 때 서울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그나마 많은 편이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16대 총선]]에서도 보수정당이 서울에서 패하긴 했지만 시민단체들의 낙선, 낙천 운동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대세론으로 서울 의석 3분의 1 이상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연이은 재보궐선거로 한나라당이 의석을 더욱 추가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17대 총선]]에선 탄핵 역풍이 불며 당시 열린우리당이 서울 의석의 약 6할을 차지했다. 다만 당시 여권 분열로 인해 한나라당도 예상보다 높은 의석을 차지한다. 열린우리당은 이전부터 지지세가 강했던 동북권 17석 중 홍준표의 [[동대문구 을]]을 제외한 16석을 모조리 석권했지만 여권 분열로 인해 서북권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서남권에서도 [[영등포구]] 2석을 한나라당에 내주었다. 한편 이 선거를 통해 서울을 중심으로 486세대가 새롭게 국회에 진입하면서 [[탄돌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48석 중 40석을 가져가며 보수정당 입장에선 유일한 압승을 기록했다. 지난 대선에서 호남 출향민들과 리버럴 성향 유권자를 어느 정도 결집시킨 야권에서는 [[통합민주당]] 창당을 통해 야권 통합을 이루어 전통적 지지 기반을 회복하고 주요 지역구에 [[손학규]], [[정동영]] 등 핵심 인사를 공천해 지지세가 강한 지역구를 수성하려 했고, 한나라당에서는 지선과 대선에서 25개 구에서 전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강북의 야권 우세 지역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뉴타운]] 바람이 불면서 서울의 야권 강세 지역의 민심이 흔들리면서 [[노도강]]에서조차 경합 상황이 벌어지면서 야권의 주요 인사들조차 낙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통합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부진했던 영등포권에서 의석 방어에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강서권 4석에서 참패했고, 동북권에서 단 2석밖에 방어하지 못하며 전체적으로 7석에 그쳤다. 한편, [[은평구 을]]에서 [[제17대 대통령 선거|직전 대선]]을 통해 이름과 얼굴을 알린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MB의 남자이자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후보를 1만 표 정도 차로 꺾는 대이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의원직을 상실했고, 2010년 7월 재보선에서 이재오가 탈환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19대 총선]]에서는 야권이 다시 서울 의석의 약 6할을 차지했다. [[민주통합당]]이 강북 지역 대부분을 탈환했지만 [[정통민주당]]의 표 분산[* [[은평구 을]], [[서대문구 을]].]과 [[송파구 병]]에서의 공천 삽질로 새누리당도 16석으로 꽤 선방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권 분열이 일어나면서 민주통합당이 승리하기도 했고, 인물론으로 새누리당이 유리했지만 본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승리한 경우도 있었다. 한편 2014년 정몽준의 서울특별시장 출마로 인해 다시 치러진 [[동작구 을]] 재보궐에선 [[김종철(1970)|김종철]]의 표 잠식과 [[기동민]]의 늦은 사퇴로 인한 무효표, 거기에 [[흑석뉴타운]]의 영향으로 [[나경원]] 후보가 정의당 노회찬 후보를 979표 차이로 이기면서 3선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을 계기로 치러진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선 [[관악구 을]]도 새누리당에게 넘어갔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의 갖은 실책에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강남3구에서마저 민심이 이반되면서 [[강남구 을]], [[송파구 을]], [[송파구 병]][* 엄밀히 말하자면 이 지역은 재탈환한 것이다.]을 더불어민주당에게 헌납했으며, [[강남구 갑]]에서도 겨우 9.63%p 격차로 새누리당 후보가 신승했다. 역시 부촌인 목동이 있는 [[양천구 갑]]도 민주당이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만 강남3구와 밀접한 [[동작구 을]]인 경우는 나경원의 지역구 관리에 야권분열까지 겹쳐지면서 나경원 후보가 11%p란 넉넉한 격차로 승리하면서 4선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국민의당과의 표 분열로 인해서 새누리당이 [[강북구 갑]], [[도봉구 을]] 등 강북 지역의 일부 지역구를 되찾기도 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총 49석 중 41석을 가져가며 압승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계급 투표 경향이 강화되었는데, 종합부동산세의 영향을 받은 [[송파구 병]]을 제외한 [[강남3구]]와 [[용산구]]에서는 민주당 여권 지지세가 약화되었으며, 이외의 지역에서는 여권 지지세가 강해졌다. [[강남구 을]]에선 개포동으로의 부유층 유입으로, [[용산구(선거구)|용산구]]는 동부 지역의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반감, [[송파구 을]]에선 박원순 시장의 정책에 대한 실망감과 헬리오시티와 잠실의 이반으로 의석을 상실하였다. 그나마 [[송파구 갑]], [[송파구 을]], [[강남구 을]], [[용산구(선거구)|용산구]]에선 5%p 미만 격차, [[서초구 을]]에선 8.65%p 격차로 비교적 적었던 것이 더불어민주당에겐 위안이 되었다. 반면에 [[동작구 을]], [[양천구 을]] 등 국민의힘이 가졌던 의석 중 용산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차지하는 데 성공하였다. 특히 [[동작구 을]]에선 신인이였던 이수진 후보에게 나경원 후보가 7%p 격차로 졌다. [[강북구 갑]], [[도봉구 을]]도 다시 민주당에게 넘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