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재응 (문단 편집) == 피칭 스타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서재응 투구폼.gif|width=100%]]}}} || 아마추어 시절 최고 95마일(153km/h)까지 던지는 강속구 투수였으나, 마이너 시절 [[토미 존 수술]] 이후로 구속이 감소한 탓에 제구력과 변화구 위주의 기교파 투수로 스타일을 바꿨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통산 BB/9이 2.73일 정도로 제구력만큼은 극찬을 받았다.[* 2003년 데뷔후 102타자 연속 무볼넷을 기록했는데 이는 1945년 공식 집계 이래 최고 신기록.] 주로 투심 패스트볼, 커브와 체인지업을 구사했는데 특유의 제구력과 맞물려 경기가 잘 풀리는 날에는 문자 그대로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손색이 없었다. 한국 시절을 주로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공이 느리고 컨트롤과 변화구가 좋은 기교파로 기억되나, 미국 시절 전성기의 서재응은 구속도 빠른[* KBO 기준이다. 수술 후인 2005년을 기준으로 평균 87.7마일 최고 93마일까지 나왔지만 당시 우완 평속이 89.5마일이던 MLB에서도 딱히 빠르다고 하기는 어려운 구속. 그래도 당대 MLB 기준으로 빠르지는 않아도 그렇게까지 느린 구속은 아니었다.] 투수였다. 구속이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 폭락해 버리는 보통 투수들과는 다르게, 서재응은 노쇠화가 상당히 긴 시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온 편이다. 매년 깎여나가는 구속을 매년 새로운 변화구의 추가와 우수한 컨트롤, 베테랑이 되어가며 붙는 경험에 의한 타자와의 수싸움 능력으로 버텨나간 선수. 결국 이러한 요인들로 2012년에는 나이 30대 중반에 140도 던지기 힘든 구속을 가지고도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제 2의 전성기를 꽃피울 수 있었다. 10승을 못 거둔 게 아쉽긴 하지만, KBO 시절 2010~2012년 제2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3년간 소사, 윤석민 등 1선발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솔리드한 2~3선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양현종]], [[아킬리노 로페즈]], [[윤석민(투수)|윤석민]], [[헨리 소사]] 등 이 3년간 에이스들은 매년 바뀌었지만, 이 선발들의 뒤를 받쳐주는 2~3선발은 항상 변함없이 서재응이었고 이 기간동안 KIA는 선발진이 강한 팀이라는 평가를 항상 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래 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우승 이후 찾아온 혼란기 몇 년간 베테랑으로서 팀의 선발진의 중심을 잡아 준 선수. 최전성기엔 송곳같은 컨트롤로 꽂히는 140 중후반대의 포심, 투심과 체인지업의 삼지선다에 커브를 곁들이는 투수였고, 이후 구속이 점점 떨어지며 각종 변화구들로 이를 극복해, KBO리그에서 활동한 커리어 후반에는 당대 KBO 리그에서 구종 다양하기로 손꼽는 수준의 변화구 투수가 되었다. 국내에 온 후 포크, 커터, 슬라이더 등을 연마했으며, 커리어 후반부엔 체인지업보다는 포크를 중심으로 레퍼토리를 짜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그가 던졌던 커터와 투심은 당시엔 국내에선 보기 드문 구종으로, 구종 보급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선수. 두 번의 WBC 참가 이후 커리어가 크게 꺾였다. 메이저리그에서 8승을 거두었던 2005년에 최전성기를 맞았다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후 크게 부진하며 이듬해 시즌을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나야 했다. 2012 시즌에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등 KBO리그 개인 최고 시즌을 보내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나 싶었는데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후에는 신생 팀 NC를 상대로 10실점을 맞는 등 다시 크게 부진했으며 이게 결국 현역 은퇴로 이어졌다. WBC 대회가 시즌 직전에 시작하므로 평소 시즌 준비와 달리 더 이른 시기에 몸 상태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선수에게 악영향을 끼치는게 아닌가 하는 의견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모든 WBC 참가자가 그해 시즌 부진한 것도 아니니 무조건이라곤 할 수 없다. 다만 시즌 전 대회가 선수들이 매년 하는 시즌 준비 패턴에 변화를 가져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2006 WBC에는 구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참가했으며, 2013년에는 관리가 필요한 상당한 노장이었음에도 참가하는 등 조국을 위해 개인의 불이익이 예상됨에도 이를 무릅쓰고 헌신한 자세는 그의 애국심과 책임감이 돋보이는, 칭찬받을 만한 자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