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청원 (문단 편집) === 친박계 좌장으로 [[이명박 정부|보수]] [[박근혜 정부|정권]] 10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서청원-3.jpg|width=100%]]}}} || || '''{{{#fff △ 서청원 의원}}}''' ||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박근혜]]를 지지하였다.[* 지금으로서는 의외로 서청원이 [[친박]]이 되기 전에는 [[이명박]], [[이재오]]랑도 친분이 다소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6.3 항쟁으로 [[박정희]] 정권에 저항했었다. 또한 서청원은 [[이명박]], [[이재오]]보다 YS계로서의 군번도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상호 관계가 나빠졌다 해도 예전에는 어느 정도 관계가 있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청원이 친박이 되고, [[이명박]]의 [[도곡동]] 토지 차명 소유 의혹까지 제기하면서 사이가 상당히 나빠졌다. 다만 [[상도동계]] 중에서 친박계로 넘어온 사람은 서청원이 거의 유일하다시피하다. 당장 상도동계의 보스인 [[김영삼]]도 박근혜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평가를 했을 정도이고('칠푼이' 발언), 친이와 친박의 관계도 좋지 않았는데 친박으로 넘어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행보이다.] 이 때 친이계는 서청원 전 대표가 당적이 없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대응했고, 결국 똑같이 당적 없이 박근혜를 돕던 [[홍사덕]]과 같이 2007년 8월 말에 복당이 이뤄진다. 하지만 대선 후보는 [[이명박]]이 선출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과 [[친이]]는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였던 서청원 등 친박계를 2008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보복했다. 이에 친박계는 [[참주인연합]]이라는 정당에 대거 입당하여 당을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로 [[테라포밍]]했고, 서청원은 당 대표가 되어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양정례]](비례 1번), [[김노식]](비례 3번)의 비례대표직 금품 수수[* 총 32억 1천만원을 받아서 정당 운영비용으로 썼다.]로 인해 국회의원이 당선되자마자 검찰에 소환되었고, 결국 당선 1년만에 [[대법원]]이 2심 결과를 그대로 판결하면서 징역 1년 6개월형을 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이때 특이하게도 [[문재인]] 변호사의 이름이 서청원의 변호인 명단에 올랐는데, 사건을 수임한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46447.html|#]]] 그렇게 다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2010년 8월에 광복절 특사로 잔여형을 면제받고 석방되었다. 하지만 피선거권이 박탈되었기 때문에 당적이 없었으며, 당 대표가 아예 없던[* 이규택 대표는 [[미래연합]]을 창당하면서 이탈했고, 서청원의 측근인 [[노철래]] 의원이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맡고 있었다.] 미래희망연대는 서청원 전 대표의 사면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다가 2012년 2월에 미래희망연대는 [[한나라당]]과 합당했고[* 비슷한 시기에는 [[미래희망연대|친박연대]]를 탈당한 [[미래연합]]의 [[이규택]] 대표와 그 세력들이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이규택]] 대표가 탈당한 미래연합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했고 소멸되었다.], 2013년 2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사면을 통해 피선거권을 회복시켜주면서[[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9/2013012900759.html|#]] 상임고문 자격으로 [[새누리당]]에 다시 복당했다.[[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30409/54295887/1|#]]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서는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별다른 연고가 없는[* 다만, 서청원의 외가가 [[화성시]]라서 아주 관련이 없지는 않다만, 그 지역은 현재는 [[의왕시]]에 편입되어 서청원의 지역구가 있는 [[남양읍]], [[향남읍]] 등과는 연관성이 없다시피 하다.] [[경기도]] [[화성시 갑]] 선거구로 옮겨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원래 화성 갑 의원인 [[고희선]] 의원이 임기중에 사망해서 공석이 된 상태였다.] 당시에 이미 70세라는 다소 많은 나이였는데다 [[심근경색]]까지 앓아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쓰냐는 [[민주통합당]] 측 공세가 있었다. 3년 후인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서 당선되었다. 거물답게 지역구 사업에 예산을 잔뜩 끌어왔다는 후문이 있다.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황우여]] 대표의 뒤를 이을 2년 임기의 당 대표를 선출할 때 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다. 당시 출마한 사람은 [[김무성]], [[이인제]], [[김태호(1962)|김태호]] 등이 있었는데 친박 진영이 서청원 전 대표를 밀어주었으나 끝내 비박계가 밀어준[* 김무성은 2009년 경에 특임장관 제안을 받고 박근혜와 상의했지만, 이에 대해서 박근혜 측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적도 있고, 원내대표 출마 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일들로 인해 김무성은 박근혜에게 제대로 찍혀 19대 총선에서 아예 공천을 받지 못 한다. [[자유선진당]]과 연합하여 신당 창당도 고려했으나 결국 선당후사라는 명목으로 총선 출마를 포기했고, 이후 대선 정국에서 총괄선대본부장으로 기용되면서 다시 돌아온 것.] [[김무성]]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에 올랐다. 이후 [[김무성]] 대표와 시시건건 마찰을 빚었는데[* 애초에 둘 다 [[상도동계]] 출신이었다. [[통일민주당]] 시절부터 함께 했었고 친박계가 된 시기도 엇비슷했다],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김무성에게 밀려 2위로 [[최고위원]]이 된 이후에도[* 당시는 집단지도체제였다. [[20대 총선]] 이후 [[이정현(정치인)|이정현]] 지도부가 들어서는 경선부터 당헌당규를 바꿔 단일지도체제가 되었고 2019년 6월 작성시점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친박]] 좌장 타이틀이란 영향력은 건재하여,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이른바 박근혜 마케팅을 동원해 [[유승민]]을 포함한 비박계 의원들이 공천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또한, [[최경환]] 등 친박 의원들과 같이 '''박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진실한 친박)'''이란 민망한 표현을 쓰는 등 새누리당 [[새누리당 대표 직인 날인 거부 사태|내부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였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정당별 결과/새누리당|그 결과 선거에서 참패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박근혜]]는 총선 당시 74세의 고령이었던 서청원과 숱한 당적 변경으로 인해 이미지가 시원찮던 [[이인제]]를 묶어서 정계은퇴로 밀어낼 생각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0대 총선에서 122석을 얻고 원내 제2당으로 밀려난 새누리당의 대참패 이후, 김무성을 포함한 지도부는 전격 사퇴 수순에 들어갔는데도 별 소식이 없다. 아마도 수도권을 제외하고 경상도 등 새누리당의 주요 텃밭 지역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어찌어찌 당선에 성공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http://news.joins.com/election2016/article/19886818?cloc=joongang%7Chome%7Cnewslist2|#]] 그런데 당 내부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에 서청원을 지명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친박 대표주자인 서청원의 박 대통령 마케팅으로 선거에서 참패한 것을 보면 꿈도 희망도 없다. 결국 2016년 6월 8일 20대 국회의 전반기 의장을 더불어민주당이 맡고 대신 법제사법위원장을 새누리당이 맡기로 합의하면서 무산되었다. ||<-2> '''{{{#fff ▽ 임시 국회의장 서청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ile2.nocutnews.co.kr/20160609193506579_009_prev.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ile.dailian.co.kr/news_1465461225_576240_m_2.jpg|width=100%]]}}} || || '''{{{#fff Before}}}''' || '''{{{#fff After}}}''' || 6월 9일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선출을 위한 의원 표결에서, 현역 최다선 의원으로서 임시 의장을 맡았다. 표결 후, 당선자인 [[정세균]] 의원에게 의장석을 넘겨주었다.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면 국회의장이 될 수도 있었을 본인에게는, 꽤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듯 하다. 정치인으로서 마지막 꿈이 국회의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위의 서술을 보아도 알 수 있듯, 국회의장 출마 자격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5선 시절, 즉 16대 국회부터 국회의장 자리에 도전했었고, 20대 국회에서야말로 의장석에 앉을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으나, 끝내 임시 의장만 맡아 봤으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할 만한 상황.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섰던 라인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당에서 청산되어야 될 구태 정치인 1호로 지목되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를 맡으면서 잘 나가던 [[최경환]]과 함께 출당처리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