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거방송 (문단 편집) ===== 역사 ===== * 한국에서 선거방송이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고 볼 수 있는 시기는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가 시초라고 볼 수 있으며, 이때의 개표방송은 며칠씩에 걸쳐서 KBS 라디오로 중계되었다. 라디오에서 각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개표방송을 시작한 시기는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부터이지만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 1980년대 중순까지는 공동으로 개표방송을 진행되기도 하였다. 한편 TV를 통한 개표방송이 이뤄지게 된 것은 1963년 KBS-TV가 시초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당시 방송자료가 없다시피 한 수준이니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해외 선거방송을 통해 대강 추측해보는 수준이다. *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의 개표방송의 경우 [[라디오]]의 경우에는 1967년도와 1971년에 공동 개표방송이 진행되었고, [[TV]]에서도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 때는 [[KBS]]와 [[동양방송|TBC]]가 각자 따로 방송했지만 1970년대에는 제작비 절감과 전파낭비 방지 명목으로 KBS, TBC, [[MBC]]가 합동으로 방송하는 형식을 띄었다. 물론 방송을 100% 같이 진행한 것은 아니고 따로 시간을 나눠어서 어떤 시간에는 같이 방송을 하고 어떤 시간에는 따로 방송을 하는식으로 시간을 배분했으며 1970년대 당시 KBS에서 상업광고를 폐지한 상태였기 때문에 KBS는 MBC와 TBC가 광고할 동안 따로 공공기관 광고나 캠페인, 프로그램 예고나 안내 영상을 내보냈다. *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 때는 특이하게도 [[1978 방콕 아시안 게임|아시안 게임]]과 시기가 겹쳤기 때문에 아시안 게임도 중계하고 총선 결과도 전하는 식으로 동시 방송되었다(...) *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 KBS에서 한국전자계산과 같이 미국 프라임 사의 "프라임 750"을 이용해서 개발한 총선 개표집계시스템을 활용하여 개표방송을 진행했다. 컴퓨터를 활용한 개표방송은 한국에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인데 1970년대까지는 일일이 선관위와 개표소에 있든 기자들이나 개표원들에게 연락해서 개표결과를 보도하는 식으로 개표방송이 진행되었던지라 선거개표방송이 진행되던 도중에 타 언론사 기자들이 KBS에 연락해서 개표결과를 받아갔다는 후문이 있다.(...)[* 본디 [[1980년 국민투표]] 때부터 컴퓨터를 활용한 개표방송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컴퓨터가 전압불량으로 고장이 나는 바람에 1980년 국민투표 개표방송에서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개표방송을 진행하였고, 이후로 고장원인을 재차 분석하여서 새로히 컴퓨터를 장만한 다음에 1981년 총선부터 쓰게 된것이다.] 그리고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실시된 공동 개표방송 진행의 전통에 따라[*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전파낭비를 막는다는 명목하에서 정부차원에서 TV 방송시간을 조정했고, 실제로 1980년대 전반기까지 전력사정이 불안정했기에 먹히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냥 신문사들로부터 눈치를 본다거나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상투적인 항의, [[케이블 방송]] 키우기 등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이지만] KBS와 MBC가 동시 방송하였다. *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우리나라도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개표방송을 하기 시작하는데 MBC의 경우 EDDS(Election Data Display System)라는 시스템을 구축해 선거방송에 활용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KBS와 MBC가 개표방송을 공동으로 제작-진행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로 [[민주화]]가 성취된 이후인 [[제13대 대통령 선거|13대 대선]] 때도 마찬가지로 [[KBS]]와 [[MBC]]가 선거방송을 공동으로 제작했고, 당시 [[KBS 뉴스 9]]의 앵커인 [[박성범]]이 진행자를 맡았다. [[컴퓨터 그래픽스]](CG)는 쉽사리 생각할 수도 없던 시대라[* 당시에는 속칭 '수파'라는 텔레시네 자막으로 득표수 숫자를 표기했다.], 그나마 전광판을 이용해서 방송을 했다.[* 당시에는 화면 위치상 기호 4번 김종필까지 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국민들 관심이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과 [[노태우]]에게만 집중되어서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지나갔지만...] 이 선거방송은 법정선거일의 다음 날 낮까지 지속되었고, [[노태우]]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끝났다. 개표는 밤에 하는 뉴스를 할 때까지도 완료하지 못 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9615_19322.html|영상]] * TV 선거방송에서 방송사간의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로, 1988년 대선 개표방송때부터 양 방송사가 공동제작-중계를 그만두고 따로 개표방송을 진행하기로 하면서 경쟁이 펼쳐지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개표속보를 얼마나 빨리 내보내고, 얼마나 빨리 당선예측을 하나, 그래픽을 얼마나 다채롭게 보내냐는 식의 경쟁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출구조사는 선거법 문제로 못했다~~ 한편 본격적인 예능요소의 도입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가 시초로 본격적인 상업방송인 [[SBS]] 개국의 영향으로 그래픽이나 신속보도 외에도 다른 부문에 있어서도 차별화해야할 필요성이 생겼나면서 각 방송사에서 늘 그렇듯이 최신 그래픽을 선보인다거나 신속보도를 한다거나 식으로 개표방송을 진행했는데 MBC에서 해외 개표방송을 다소 참고해서[* 개표방송 준비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민방, 유럽 주요방송사들의 선거방송을 다소 참고했는데 이 가운데 예능요소의 도입의 경우에는[* 다만 그 이전에도 예능요소가 아주 없던것은 아니라서 개표방송 도중에 가수들이 노래하고 그랬다.] 일본 민방 개표방송을 다수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2010년대 한국에 비하면 참으로 심심하다(...)] 예능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 연예인을 리포트로 삼거나 코미디언 최병서를 대선퀴즈를 내는식으로 선거방송이 진행되었고 시청률면에서 상당히 재미를 보면서 KBS와 SBS도 후에 최신 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 화면을 활용하는 선에서 벗어나서 개표방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콩트를 삽입하거나 연예인을 인터뷰하는 등의 예능요소를 도입했다. 다만 이때 예능요소의 도입은 2010년대 개표방송에 비하면 다소 지엽적이기 때문에 2010년대 기준으로 볼 때 다소 심심한 편이다. ~~일본 민방개표방송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선거방송의 핵심은 신속성과 정확성이었다. [[1990년대]] 선거방송을 시청한 사람들이라면 기억하듯이 항상 수십 여 대의 [[전화기]]와 [[팩스]]를 보여주면서 '저희 방송사의 선거예측시스템이 가장 뛰어납니다. 이렇게 많은 전문 선거요원이 있지 않습니까?'라며 열을 올렸다. *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선거방송에서의 방송사 간의 정확성 경쟁이 가열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15대 대선]]에서 [[KBS]]는 [[기자]]들의 손에 [[휴대전화]]를 얹어주고 각 개표소로 보냈고, 이를 활용한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한 선거방송을 선보였다. [[2000년대]]에는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고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전자개표기까지 도입되었고 이후 선관위 공식집계자료를 모든 방송사가 받아서 쓰게되니[* 그 전까지는 직접 방송사 직원들이 지역별로 선관위 개표상황을 전달받은 뒤 방송국에서 취합하는 식이었고, 이 때문에 방송사마다 개표 현황이 조금씩 차이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방송사 간의 사실상 속도 전쟁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정확성과 이를 표현해 가공시키는 그래픽 전쟁일 뿐... * 다양한 첨단 선거 장비가 도입이 되어 개표 속도가 빨라지면서, 선거방송도 빠른 시간에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15대 대선]] 중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시점은 법정선거일의 익일 오전 4시 12분(개표율 약 98%)이었으나,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2198_19482.html|#]] 투표지분류기가 도입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16대 대선]] 중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시점은 법정선거일 오후 11시 26분(개표율 95.7%)이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2/1898784_19562.html|#]] 단, 시간이 흘러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코로나19]]로 인한 확진자 투표로 저녁 7시 30분에 종료되어 개표가 늦게 되었고 헌정 사상 가장 적은 득표 차로 접전이 일어나 당선 예측이 늦었는데 [[KBS]]가 먼저 익일 오전 2시 13분 당선 유력을 예측했고 오전 4시 38분 개표 99.8% 시점에 당선이 확정되어 1997년 15대 대선 이후 25년 만에 새벽에 당선이 확정 발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