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양 (문단 편집) ===== 남조 ===== * [[동진]]의 [[공제(동진)|공제 사마덕문]]이 [[송(육조)|송]]의 [[무제(유송)|유유]]에게 선양 유유는 환현을 제압하고 [[안제(동진)|사마덕종]]을 복위시켰으나 북벌이 잘 진행되다가 실패하면서 위상이 흔들리자 사마덕종을 제거해버린다. 바보황제로 유명한 진혜제 [[사마충]]도 저리 가라 할 지적장애를 지녔던 사마덕종을 죽인 것은 역설적으로 사마덕종의 지적장애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사마덕종이 사마충 같이 최소한의 인지능력이라도 있었으면 유유는 선양이라는 쇼를 거쳐 사마덕종에게 제위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대소변도 못 가리는 자가 선양을 한다고 하면 '''대놓고 찬탈을 자랑'''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유유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면이 컸다. 사마덕종을 죽인 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형이 후사없이 죽으면 그 밑의 아우가 이어받는 것은 기본 원칙이었기에 그의 아우 사마덕문을 세우고 얼마 되지 않아 그로부터 선양받았다. 하지만 정신지체인인 사마덕종과 달리 사마덕문은 정상인일 뿐더러 덕망도 얻고 있었다. 게다가 유송 왕조의 기반이 그리 튼튼하지 못한지라 만일 사마덕문이 유유를 공격한다면 유유가 [[역관광]]을 탈 가능성이 있었다. 결국 유유는 사마덕문을 죽이고 사마씨를 멸족시키고 만다. 환씨들과 함께 북위에 투항하여 중용된 사마초지 등 방계가 살아남기는 했다. * 송나라([[송(육조)|유송]])의 순제 [[송순제|유준]]이 [[제(육조)|제나라]] 고제 [[소도성]]에게 선양 유유가 사마씨를 멸족한 것은 살벌한 레이스의 시작이 됨과 동시에 후대 왕조의 창건자들에게 좋은 정당성을 주었다.[* 실제로 유송의 마지막 황제 순제와 왕경칙의 대화에서도 이게 나온다.] 실권자 소도성은 송나라의 내란을 틈타 [[후폐제(유송)|후폐제 유욱]]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유욱의 아우 유준을 옹립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야심을 드러냈다. 소도성은 부하 왕경칙을 시켜 숨어있던 유준을 찾아내 선양받았다. 애초에 유송 왕조의 황족들은 자기네끼리 '남자 친척은 죽이고 여성 친척은 겁탈한다'(…)를 시전한지라 살아남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소도성이 별 위협도 안되는 유준을 포함한 유씨들을 도륙내면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후세의 사학자들은 이 살육을 무쓸모라고 평가하고 있다. 오죽하면 소도성의 유송 황가의 학살을 두고 이미 후폐제가 저지른 막장 행각들로 천명이 유씨에게서 떠났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평가도 존재했다.] 이때 살아남은 사람은 [[전폐제(유송)|전폐제 유자업]] 때 [[북위]]에 투항한 [[문제(유송)|문제 유의륭]]의 9남 유창 뿐이었다. * 제나라 화제 [[소보융]]이 [[양(육조)|양나라]] 무제 [[양무제|소연]]에게 선양[* 그런데 [[양무제|소연]]은 [[제(육조)]]의 [[왕족|종친]]으로 촌수를 따지면 [[소보융]]의 4종숙부(11촌)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양위]]지만 국호가 바뀌어서 다들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명제(남제)|명제 소란]]의 황족 도살과 동혼후 [[소보권]]의 폭정이 지속되고 소보권이 자신의 형 소의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이려 하자 소연은 소보권의 아우 소보융을 옹립하고 난을 일으켜 소보권을 죽였다. 실권을 장악한 소연은 소보융에게서 선양받았고 얼마 후 소보융을 비롯한 소도생(蕭道生)의 자손들을 멸족시켰다. 이때 살아남았던 사람은 명제 소란의 장남이자 장애인이었던 소보의와 소란의 6남으로 북위로 투항한 소보인,[* 북위에서 제왕에 봉해졌고 관직이 삼공에 이르렀으나 모반 세력중 하나인 묵기추노에게 잡힌 이후 반란을 종용받다 이주영에게 토벌되어 죽었고 그의 자식들도 다른 죄에 휘말려 모두 죽어 결국은 멸족당했다.] 소보권의 아들로 보이는 [[소종(양나라)|소종]]뿐이었다.[* 소종의 어머니 오씨는 소보권의 후궁이었고 소종은 소보권이 죽은 지 7개월 만에 태어났다. 하지만 소보권이 죽은 후 소연이 손에 넣었으므로 소연의 아들이라고도 한다고는 하지만 소보권의 아들일 확률이 높다.] * 양나라 경제 [[소방지]]가 [[진(육조)|진나라]] 무제 [[진패선]]에게 선양 [[후경]]의 난을 제압한 진패선과 왕승변에 의해 옹립된 원제 [[소역]]이 [[서위]]의 공격을 받아 피살당하자 진패선은 소역의 9남 소방지를 세웠다. 이때 북제에 투항하려던 왕승변을 죽이고 북제의 침입을 막아낸 진패선은 실권을 잡고 소방지에게서 선양을 받고 그를 죽였다. 다만 소방지 외에 다른 소씨 황족들은 죽이지 않고 살려줬다. 공통적으로 이전 황제였던 유준, 소보융, 소방지가 모두 제거되었다. 다만 양나라의 소연은 제나라의 황족 방계에 해당되므로 소씨 전체를 죽이지는 않았고, 진패선은 소방지를 죽였으나 강릉에 위치한 서위의 괴뢰 정권인 [[후량(남북조시대)|후량]]은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소방지 외의 양나라 소씨를 죽이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진나라 마지막 황제 후주 [[진숙보]]는 [[수나라]] [[수문제|양견]]에게 죽지 않고 진씨 일족 모두 서북 지방에서 땅을 받고 천수를 누렸다. 이때 후주는 선양이 아니라 육조의 첫 타자인 [[오(삼국시대)|오]]의 [[손호]]와 같은 경우로 정벌로 멸망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