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양 (문단 편집) ===== 북조 ===== 북조에서는 [[북위]]가 일단 [[동위]]와 [[서위]]로 갈라서면서 막장이 시작된다. 북위는 강대했지만 나중에 [[선무제]] 원각의 황후였던 [[선무영황후 호씨|호태후]]가 나라를 말아먹었는데, 호태후는 자신의 친아들인 [[효명제]] 원후가 자신의 뜻을 거스르자 독살하고, [[효명제의 딸|그의 딸]]을 아들로 속여 황제로 세웠다. 당시 [[이주영(북위)|이주영]]이 호태후와 '가짜 황제' 원소, 대신들 2천여 명을 [[황하]]에 처넣거나 처형하는 '''하음의 변'''을 일으키고, 권력을 잡은 다음 [[효장제]] 원자유를 세웠다. 이주영은 원자유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냈는데, 원자유는 이주씨가 사내아이를 낳았다고 거짓으로 소문냈고, 이것을 믿은 이주영이 입궐했다가 원자유에게 암살당했다. 두 달 후 이주영의 조카 이주조가 군대를 이끌고 원자유를 생포해 유폐했다가 죽여버린다. 이때 이주영의 부장이었던 [[고환(남북조시대)|고환]]이 이주조를 토벌하고 대승상 대장군에 올라 권력을 잡았다. 당시 황제였던 [[효무제(북위)|효무제 원수]]는 고환에게 모욕을 당하자 말을 타고 홀로 수도 [[낙양]]에서 [[시안시|장안]]으로 도망가버렸다. 고환은 추격했지만 잡지 못 하자 그의 친척이었던 원선견을 황제로 세우니 이것이 동위 정권이었다. 한편 장안으로 달아난 원수는 관서 도독 [[우문태]]에게 의지하니 그가 권력을 잡는데 이것이 서위 정권이었다. 참고로 원수는 <북사>에서는 효무제라고 되어있으나 <[[위서(역사책)|위서]]>에서는 도망친 황제라고 조롱하는 의미에서 '출제'(出帝)라고 되어있다. 원수는 고환에게서 도망칠 때 사촌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갔는데 음란해서 그들과 마구 사통했다. 이것을 우문태가 자주 지적했지만 무시하자 우문태는 황제의 사촌누이들을 죽여버렸다. 이에 원수는 자신의 입장도 생각 안 하고 화를 내며, 빈 활시위를 우문태를 향해 당기고 책상을 손으로 강하게 치는 등 불만을 표시했다. 결국 원수는 우문태에게 [[독살]]당하고, 우문태가 그의 친족 원보거를 황제로 세우니, 원보거는 16년간 그럭저럭 황제로 체면치례하면서 살다가 죽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인 [[폐제(서위)|폐제 원흠]], [[공제(서위)|공제 원곽]]은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그 후 동위의 원선견은 고환의 아들 [[고양(북제)|고양]]에게, 서위의 원곽은 우문태의 아들 [[효민제|우문각]]에게 선양하면서 동위는 [[북제]], 서위는 [[북주]]가 되었다. * [[동위]]의 [[효정제]] 원선견이 [[북제]]의 문선제 [[고양(북제)|고양]]에게 선양 원선견은 [[고환(남북조시대)|환]]의 뒤를 이은 [[고징]]의 부하에게서 '폐하, 대장군이 말 타고 빨리 가시지 말라 하셨습니다' 소릴 들을 정도로 [[말(동물)|말]]도 마음대로 타지 못 하는 지경에 있었다.[* 이것은 고환에게 모욕을 당한 북위의 효무제가 말을 타고 장안으로 도망친 일이 또 일어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환은 효무제 원수가 도망친 선례가 있어 겉으로는 나름 공손히 원선견을 모셨고,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으나, 고환이 죽고 장남 고징이 뒤를 잇자 원선견은 갖은 핍박을 받았다. 하루는 함께 술을 마시다 원선견이 '[[짐]]'이라고 하자 술에 취한 고징이 '개 같은 놈의 짐'이라고 하면서 조롱하고 부하를 시켜 구타했는데, 무력했던 원선견은 오히려 고징에게 사과하고 금과 비단까지 하사해야 했다. 원선견이 열이 뻗쳐 고징을 죽이려 하다가 발각되었고 고징이 분노해 이를 따졌으나 오히려 원선견은 [[극딜]]했다. 고징은 그 자리에선 일단 잘못했다고 빌었으나 얼마 후 원선견을 감금했는데, 고징은 마침 음식 나르던 노비 난경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때 원선견은 황권을 탈환할 기회를 얻었으나 고징의 둘째 아우 고양이 태연스럽게 워낙 뒷마무리를 재빠르고 깔끔히 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원선견은 모든 걸 포기하고 고양에게 선양함으로써 목숨을 구걸했지만 선양한 지 얼마 안 되어 피살당했다. 그후 고양이 무덤을 파헤쳐 관을 꺼내 장수에 던져버리는 [[부관참시]]를 행했다. 이때 동위 황족 원씨 700여 명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피살했으며, 이들의 시체도 장수에 버렸는데, 장수에서 잡은 물고기에서 사람의 손가락이 나와 수도 업성 사람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 [[서위]]의 [[공제(서위)|공제]] 원곽이 [[북주]]의 [[효민제|효민제 우문각]](宇文覺)에게 선양 이 경우는 좀 재미있는데, 우문각은 [[우문태]]의 차남으로 사실 직접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문태가 죽자 우문각이 뒤를 이었지만 실권은 우문태의 조카인 진공 우문호가 쥐고 있었다. 우문호는 공제를 시켜 [[사촌|종제]]에게 양위하라 시키고 나중에 원곽을 죽였다.[* 동위와는 다르게 일족 자체가 멸족되지는 않아서 당나라때 원씨는 명문귀족가가 된다. 애초에 당나라 황실에 원씨의 피가 섞여 있기도 하고.] 우문각은 얼떨곁에 황제가 됐지만 우문호의 횡포 때문에 그를 죽이려다가 다음 해에 역관광당해 죽고 만다. 그의 형 [[명제(북주)|명제]] 우문육도 우문호를 죽이려다 역시 3년만에 독살당하지만 그들의 아우 [[무제(북주)|무제]] 우문옹은 마침내 12년을 기다려 우문호를 주살하고 일족을 멸해버린다. 결국 원선견과 원곽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서위와 동위 모두 원씨 일가가 몰살당했는데, 특히 동위의 원씨 일족 700명은 일거에 몰살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