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전시 (문단 편집) == 역사 == 역사적으로 선전은 [[광저우]]나 [[영국령 홍콩]]의 배후지 정도로 여겨지던 동네로, 본래 당 중기인 757년에 설치된 둥관현(东莞县, 지금의 [[둥관시]])의 일부였다가 명대에 들어 1573년에 둥관현 남부가 현재의 선전시의 전신이 되는 신안현(新安县)으로 분리 신설되었고[* 선전 지하철에 신안역으로 남아있다. 청대에는 [[홍콩]]도 신안현 관할이었다.], 이후 1914년에 [[허난성]] [[신안현]]과의 명칭 중복을 피하기 위해 바오안현(宝安县)으로 바뀌었으며[* 바오안현은 과거 이 지역을 관할했던 둥관시의 동진~당대 이름을 차용한 명칭이다. 지금도 산하 시할구인 바오안구의 이름으로 남아있으나 관할구역은 이 시기의 바오안현과는 다르다. 변화 과정은 후술. 이곳에 위치한 선전 국제공항의 이름이 [[선전 바오안 국제공항]]이다.] 지금의 이름에 이르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광저우]]와 [[홍콩]] 사이에 위치해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인구가 30만 명 정도에 불과한 정말로 별 볼일 없는 시골동네였다. 이 당시 중국에서는 두 차례의 베이비붐과 위생수준 향상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데 반해 [[이촌향도]] 현상이 벌어지기 이전인지라 이 정도의 인구를 지녔으면 지방 소도시였다.[* 한국도 지금의 군 지역들의 인구만 보면 인구 1~5만명에 불과한 지역들도 1960년대에는 인구가 10~20만명대에 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다만 홍콩과 인접해있다는 특성 때문에 돈벌 기회를 찾아 많은 외지인들이 선전에 오곤했는데 [[대약진운동]] 시기부터 [[문화대혁명]] 시기까지 중국 전역의 경제는 정체했는데 반해서 홍콩은 괄목하게 발전한 덕택에 돈벌이를 위해 홍콩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이게 매우 큰 골칫덩어리였다. 이 때는 필사적으로 홍콩-선전 사이의 로우 강을 건너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계가 삼엄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서 수영해서 오다가 중국 공안이나 [[영국군]] [[구르카]] 병사들에 의해 사살당하거나 체포되어 되돌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당시 문화대혁명이 수습된 이후로 선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 주민들의 고충이 어떠한지에 대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79년]] 3월에 '시'로 승격했으며[* 이때 기존 현정부 소재지였던 선전진(深圳镇)의 이름을 따 선전시로 개칭하였다.] [[1980년]] [[덩샤오핑]]이 시행한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광둥성]]에 지정된 경제특구 세 곳 중 하나(나머지는 [[주하이]], [[산터우]])로 지정되었고, 계획적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1981년]] 부성급시로 승격, [[1988년]]부터는 성급 경제 관리를 인정받고 있다. 1982년에는 경제특구를 제외한 지역에 바오안현을 재설치해 산하 현으로 두었다가 1992년에 다시 폐지하고 [[바오안구]], [[룽강구(선전시)|룽강구]]의 2개 구로 분할하였다. 선전시 일대는 개혁개방 시작 당시에는 1인당 GDP가 606위안 정도였지만 홍콩기업들을 유치하면서[* 주로 전자제품 생산이나 의류업 중심이었으며, 이들 산업은 한국 및 대만의 추격으로 몰락해가기 시작했을 시점이었다.]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가장 먼저 부유해진 지역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고, 선전 원주민들은 건물건설 및 사업투자로 매우 부유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 덕택에 낙후된 지역에서 벗어나 중국내에서 엄청나게 번화한 지역으로 발전되면서 [[2010년대]] 들어서는 대만의 소득수준과 비교해봐도 손색없을 정도가 되었다. [[덩샤오핑]]이 선전시를 경제특구로 지정할 때, 원래 계획은 선전시도 홍콩과 합쳐서 [[특별행정구]]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홍콩만큼의 자치권[* 민주적 선거, 개인 자유 등]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회주의 체제 적용을 제한하는 내용을 추진한 바 있다. 그 일환으로 홍콩특별행정구 설치 시 선전특구를 홍콩의 영역에 넣고자 했다. 즉 홍콩특별행정구 중 선전특구는 [[신계(홍콩)|신계]]처럼 홍콩의 일개 지역이 되고 자연스럽게 홍콩과 중국본토를 일체화시키는 아이디어였다. 이는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선전-홍콩 연합 특별행정구 계획을 수립하던 도중에 [[1989년]] [[천안문 6.4 항쟁]]이 터졌고, 이로 인해 [[중국 대륙]]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제한했다가는 [[중국 공산당]] 체제에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한 덩샤오핑은 선전 특별행정구 설치 계획을 취소했으며 선전시는 그냥 원래대로 중국본토 내 경제특구에 한정했고 [[영국령 홍콩]] 영역 그대로 홍콩 특별행정구를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