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건축) (문단 편집) ==== [[킵|keep]] ==== * 아성(영어: Keep, 독일어: Bergfried, 불어: [[던전|Donjon]]) 성(castle)이나 성채(citadel), 혹은 요새(Fortless) 내에서 성주의 지휘소 겸 최후의 방어 거점. 본래 모트&베일리(언덕과 안뜰, motte and bailey)에서 언덕(motte) 위에 세워진 요새화한 [[영주]]의 저택이 곧 성의 중앙에 설치한 거대한 탑([[던전]])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좀 더 다듬어지면서 우리가 잘 아는 네모 반듯한 아성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물품을 보관하는 [[통#s-1]](kype)에서 유래하여 킵(keep)이 되었고, 프랑스어에서는 영주 혹은 주군을 뜻하는 라틴어 [[로드#s-2|domus]]에서 비롯한 던전(donjon)이라 부르게 되었다. 영어에서는 이후 kype가 사어화되면서 [[민간어원|대중적으로는]] "지키다."라는 뜻의 keep이 유래라고 여겨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독일어에서도 비슷하다.] 이런 류의 시설은 요새화 시설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한반도에도 성 내부에서 전망이 좋은 위치에 지휘소를 세우고 장대(將臺)라고 불렀었다. 모트&베일리(언덕과 안뜰, motte and bailey)에서 베일리(안뜰, bailey)을 감싸는 성벽이 더 넓고 커지고 보루와 탑을 비롯한 각종 시설이 늘어난 것이 바로 성(castle)과 성채(citadel)이다. 그러나, 기원이 모트 엔 베일리인 만큼, 그 안에는 모트의 후계로써 최후의 방어시설로 성의 다른 부분 또는 성채의 다른 부분과 좁은 문으로 격리된 탑 즉 '[[킵|keep]]'(킵)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시설은 시야가 넓은 높은 탑이라는 점 때문에 지휘소로 매우 적합했고, 모트 시절에도 그런 역할을 수행했기에, 공성/축성 기술의 발달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방어 능력을 대부분 상실하고 순수한 지휘 설비[* 겸 종종 거주지]로 기능이 변경되어갔고, 끝에는 1차적 목적이 지휘소인 건물이 되었다. 보통 '[[킵|아성]](牙城)'이라고 번역된다. 아성 부분을 성채로 오역하거나 성채를 아성으로 오역하는 등 이해에 혼선이 많기는 하나, 'keep'은 그 개념상으로는 'citadel'과 확연히 구별된다. 'Keep'은 탑, 즉 '''단일 건물'''에서 기원한 것인 반면, 시타델은 애초부터 도시 방어 시설의 '''부속품'''으로 출발했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물론, 둘다 축성물이므로 성(castle)이나 성채(citadel)가 함락되었을 때 방어자들이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저항하는 농성 거점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흔히 킵을 영주가 사는 곳이자 최후의 농성 지점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좀 더 정확히는 (유럽에서는) 원래 그런 목적으로 만든 축성물이 맞긴 하지만, 점점 그 기능을 상실하여 목적이 변경된 것이다. 본래 영주의 저택이 있던 자리가 요새화되어 지휘소가 된 것이 킵이기 때문에, 영주의 거주처로써의 기능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으며, 또, 형태는 방어 건물처럼 되어있고 기원도 독자적 방어 건물이지만, 시대가 흘러 조금만 공성 규모가 커져도 단독으로 방어 기능을 수행하기는 어려워졌고, 점점 지휘 기능만이 존재하는 시설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엄연히 축성물이긴 하기 때문에 벽이 뚫리고 안뜰(bailey)까지 적이 들어왔을 때 최후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중세 극초기의 모트 앤 베일리 시절에는 벽도 허술한 통나무 목책 수준으로 극히 빈약하고 다른 부수적인 탑 등의 방어시설이 거의 없었기에, 킵이 그 자체로 하나의 요새로 기능하였다. 아예 '''여기서부터''' 석조화가 진행되었다.[* 이것은 기능적으로 같은 시설인 일본의 천수각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이후에도 중세 초기까지는 완전히 독자적으로 기능 가능한 요새화 설비로써 1층에 창고가 있고 2층에 주거공간을 두는 식으로 웬만한 물자와 설비가 다 들어가 있었고, 영주의 주거지로써의 기능도 (따로 저택이 없는 경우엔) 온전히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킵이 어느정도 독자적인 방어 시설이자 거주 시설로써도 기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다른 부속시설들은 안뜰에 따로 두고는 했으므로 적이 성내로 들이닥치는 시점에서 해당 성은 끝장난 경우가 많았다. 개나소나 성문에 공성추를 끌고갈 상황이면 방어측의 허술한 수성 능력에 맞먹게 공성측의 공성 능력도 개판인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킵에서 버텨내는 경우가 꽤 나올 수 있었으나, 탑과 보루 등 다른 구조물들이 덧붙여지면서 성 구조가 발전하여 킵이 아성으로써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고, 순수한 지휘 설비로써[* 물론 이 때에도 영주의 집일 수도 아닐 수도 있긴 마찬가지였지만...]의 구조물이 된 후로는 킵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게 되었다. 보통 진지하게 따져볼 만큼 착실히 진행된 공성전에서는 공성추가 성문을 때리는 순간 그 성은 함락된 것으로 판단했고, 이 때문에 공성추가 성문을 때린 순간 상대의 조건부 항복을 인정하지 않는, 즉 재산과 생명의 권리를 박탈당한 것으로 보는 관습[* 즉, 이 지경까지 가고나서 함락되면, 십중팔구 지휘관이 약탈을 ''허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보복 목적으로 약탈을 '''명령'''하는 지경이 된단 소리다. 물론 공성추가 대놓고 성문으로 갈 지경으로 가고도 도통 함락시킬 수 없던 경우도 꽤 있고,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방어측이 공격측에게 약탈 기간과 약탈 대상을 제시하는 조건부 항복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어느 식으로든 일단 항복이 받아들여지면 방어 측은 보통 자신들의 깃발을 챙겨서 "명예롭게" 퇴거할 수 있었다.]이 굉장히 오래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지휘소[* 겸 종종 영주의 거주지] 기능만을 제공하게 된 후라 해도, 엄연히 축성물로써 커다란 탑, 누각, 장대 돈대 같은 형태를 띠므로 들어가서 농성할 수 있는건 여전하다. 실제로 이미 성이 함락되었어도 끝까지 아성이나 시타델에 들어가 버티다 장렬히 산화하거나 외부의 구원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경우는 중세 초기 이후에도 꽤 많았다. 물론,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고 나면, 아성이 작은 요새처럼 생긴 이유는 순전히 요새의 지휘 시설을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요새의 모양을 가지게 된 것일 뿐, 설치 목적이 최후의 저항을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게 되어, 모트 엔 베일리 시절의 계보가 사실상 끊기게 되어 전혀 다른 시설로 변한다.[* 이 시점부터는 일본의 천수각과 같은 설비가 된다.] 즉, 훗날의 킵들은 수성전시 벽과 안뜰을 금방 내어주고 아성에서 틀어박혀서 농성하려고 지은 게 아니지만, 일단은 축성물이기 때문에 방어 기능이 존재는 하는 시설이라 하겠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당연한 것이, 킵 안에 공간이 얼마나 있을지는 킵 마다 천차만별이긴 해도, 엄연히 군대가 주둔할 수 있으니 그 자체로 군사 거점이다. 용도가 지휘소라 방어가 주 목적이 아닐 뿐.] [youtube(ZmHK_5Yiudc)] ▲ 영화 [[아이언클래드#s-3]](2011). 자신에게 저항하는 봉신의 성을 공성하는 [[존 왕]]에게 주인공 일행이 맞서는 장면들. 고중세 유럽 성에서 아성은 영주의 생활공간과 여러 핵심시설이 안에 몰려있고 주변을 성벽이 감싸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성벽을 악착같이 지키는 것이 수성의 기본전략이고, 아성은 지휘소의 기능을 한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벽이 뚫렸으나 아직 방어가 가능한 경우에는[* 대부분, 열심히 돌을 던져넣다보니 우연히 성벽이 무너졌으나 그렇다고 성문에 대놓고 공성추를 끌고갈 만큼 공성이 진척되지는 못한 경우다.], 방어측을 압박하기 위해 공격자가 감행하는 Siege Assualt 시도를 견디기 위해 안뜰에서 성문을 보호하면서 농성했고[* 벽이 뚫린다 해도 구멍이 원체 좁기 마련이라 병목이 생겨 뚫린 벽에 병력을 밀어넣는 것은 벽을 기어오르는 거랑 그다지 차이가 없는 특공이었다. 따라서 전반적인 방어가 약화된게 아니라면 벽이 단순히 뚫린 것으로는 공성 진척이 그리 많이 되지 못한다.], 재수 없게 실패하여 적의 침입을 허용하였으나 성 전체는 아직 건재한 경우라면 아성 안으로 들어가 농성을 시도했다.[* 변동이 심하던 중세 극초기라면 모트가 함락되면 군주로 있던 전사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성이 함락된 것이나 다름 없어도 어쩔 수 없이 틀어박혀 버티는 경우가 나왔으나, 이후 어느정도 봉건체계가 자리잡히고 난 후에는 명예롭게 항복하는 선택지가 더 합리적이게 된다.] 동양의 단어 중 keep과 가장 유사한 개념은 일본식 성에 있는 [[천수각]](天守閣)인데, 아성과 마찬가지로 경우에 따라 영주의 저택 기능도 할 수 있으며 구조적인 차이들을 제외하면 군사적으로는 똑같은 기능을 한다. 이러한 시설은 무언가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설치되어야 하기 때문에 동일한 물건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물론 이건 [[일본의 성|일본식 성]]에만 있는 건물이라서 일본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keep을 아성으로 번역한다. 이런 거의 같으나 동서양의 건축 양식의 외적인 차이점과 일반적으로 천수각은 목조 건물이지만 아성은 석조 건물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요새화된 시설에 반드시 킵에 해당되는 설비가 있어야 하는 건 전세계 어디든 똑같았지만, 정작 킵과 동일한 시설인 천수각은 동아시아에서는 또 일본에만 있었던 것은, 시타델 항목 등에서 전술했듯 동아시아의 대륙권에서는 도시의 근원지가 산이었던 경우가 많아, 방어 체계도 그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근원지가 산이 아닌 진정한 도시들은 너무 거대해서 천수각에 해당되는 것을 지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유럽의 사례를 봐도, 도시의 시타델은 지휘소 기능을 하긴 하나 킵과 달리 1차 목적이 지휘 기능이 아니라 방어 기능에 있었다. 일본의 경우 유럽 이상으로 지주 겸직 무사들이 지배층이었던 나라였기에, 심지어 도시라 하더라도 일종의 성관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 온전한 킵의 기능을 하는 천수각이 있을 수 있었다. 어쨌든 이런 경험 때문에 습관적으로 짓던 천수각은 임진왜란 전훈으로 대륙권 동아시아 환경에서도 유효함을 증명한 바가 있다. (여러 기록에서 왜성이 어마어마한 골칫거리였다 기록한다.) 즉, 진지하게 요새를 지으려면 킵에 해당되는 설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이 전훈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아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도 조선도 딱히 천수각 처럼 대형의 지휘용 누각을 지은 경우가 없었다. 산성에는 천수각 처럼 대형으로 지휘소를 설치하기 곤란했고,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로 인해 산성이라는 구식 방어 체계에 계속 과도한 의존이 이어진 끝에 남한산성에서의 참패라는 필연적인 경과를 맞기에 이른다.] 게다가, 일찍이 관료제 국가가 성립하여 도시를 둘러 방어하거나 산성 등 방어거점에 관료를 보내어 방어를 맡긴 탓에, 주거기능은 어불성설. 보통 병영이나 창고, 관저 등은 따로 두고 지휘소는 간단하게 [[누각]]만 세웠을 뿐 요새화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후술할 천수각도 목조 건물로써 방어력 확보는 잘 되어있지 않았다.[* 아직 석조 요새가 생겨나기 이전 시절에나 방어 기능이 있었지 이후로는 지휘 시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유럽쪽 킵과 달리 일본의 천수각은 군주가 거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거주 기능은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청 화려한 외형 때문에 여길 다이묘 같은 군주가 거주하는 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훨씬 단순하게 생긴 유럽쪽 킵 보다 거주성이 떨어진다.]) 물론, 문수산성 장대나 함흥읍성 구천각처럼 돈대 형식의 축성물을 단독으로 건설한 경우도 존재하며, 이 경우 구조상으론 성 내부의 거대한 탑(던전)과 동일하다.[* 비교하자면 바스티유 요새가 이런 유형이다.] 유럽에서도 종종 아성만 따로 빼서 지은 듯한 건물들이 있는데, 이것은 보통 [[병영]]이나 야전 지휘소 같은 시설로써 자체적인 방어 기능은 거의 못 하지만[* 방어 기능은 순전히 거기에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성과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들이다. 반대로 [[성채]](citadel)는 '''도시 내부'''에 별도로 벽을 둘러 추가로 요새화된 '''구역''' 혹은 그 구성요소 총체를 의미하며, 성채를 둘러싼 도시가 함락되었을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저항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요새화된 지역이다. 성채마저 함락될 경우 성채 안에 있는 건물인 'keep'으로 퇴각하여 저항을 계속하게 된다. 이런 방어적 이점 덕분에, 성을 지배하는 군주의 거주 시설이나 집무실은 아성 안에 마련되었다. 아성 1층이 평시에는 군주의 집무실 겸 연회장인 식으로. 마찬가지 이유로, 도시가 군주가 거주하며 통치하는 수도 도시일 경우, 군주의 집무실은 __도시 안의 성채(citadel) 안의 아성(keep)__에 지어졌다. 책마다 번역어가 약간씩 다르므로 종종 혼란을 야기하는데, 원문을 참조하여 'citadel'과 'keep'을 헷갈리지 말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