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경 (문단 편집) === 상세 === 타낙은 근대적인 저자 문학이 아니라 고대적인 전승 문학이기에, 수많은 전승들이 인용되어 있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이 단일혈통이 그대로 쭈욱 이어져 온 것은 아니라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여러 부분에서 당대 주변 민족들의 문화와 관습의 자취가 많이 섞여 있다. 기본적으로 천지창조와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기원과 역사, 율법의 성립을 다룬 [[토라]](모세오경), 역사서([[히브리인]]과 왕국 시대의 역사), 찬미가, 여러 시와 문학들,([[시편]]과 [[잠언]], [[욥기]], [[아가]] 등), 성전 건축과 각종 종교행사 관련 기록, 종교에 근거한 법률(율법)적인 문제에 대해 논하는 내용, 그리고 [[예언자]]들의 당대 유대 사회에 대한 경고와 미래에 대한 예언을 기록한 예언서([[호세아]], [[요나]], [[이사야]], [[느헤미야]], [[다니엘]] 등)와 [[제2경전]](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하권, 바룩서, 지혜서, 집회서)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낙은 무척이나 긴 시간에 걸쳐서 여러 필자가 참여하여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모세]]는 기원전 15세기, 즉 기원전 1500~1400년대 가량에 [[토라|모세오경]]을 작성하였다고 하고[* 이것이 전승이나 실제로는 몇 백 년 후의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은 [[시편]]의 대부분을 지었다고 하며, [[솔로몬]]은 [[잠언]]의 대부분과 [[코헬렛]]과 [[아가]]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솔로몬]] 이후 바빌론 포로 귀환 이후까지 여러 [[예언자]]들이 예언서를 작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저자와 연대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먼저 기원전 10세기 전의 문헌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그전에는 애초에 팔레스티나에 독서 문화가 없었기 때문. 따라서 경전연구자들은 대부분 언어학적 지식이 있는 경우라면 기원전 10세기 이후의 기록된 것이라는 점을 정설로 볼 수밖에 없으며, 실상적으로는 문법이나 문체상의 문제가 있고 그 기록 방식의 엄격성을 고려하면 특히 오경의 경우 전통적인 연대의 개연성이 낮아진다. 참고로 현재까지 학자들이 발견한 성서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7세기경[* [[요시야]]왕 재위 시기로, 한국사에서는 '''[[고조선]]''' 시대이다.]에 기록된 [[민수기]] 6장. 연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아래의 '성서 주석학적 연대 정리' 참조. 또 워낙 오랜 전승을 담고,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문헌이다 보니, 서로 다른 신학적 관점을 보여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요나]] 선지자는, 자신들의 나라를 멸망시킨 이방인들의 도시가 심판받아 망하기를 바라다가 [[야훼|주님]]에게 혼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근데 잘 읽어보면 요나의 경우 [[소돔]]과 [[고모라]] 같은 케이스와 달리 이방인들의 도시(니느웨)가 멸망하지 않은 건 왕부터 천민까지 철저히 회개한 결과다. 그래서 심판을 하지 않은 것. 또한 거기에 그치치 않고 회개한 [[요나]]서의 니느웨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마지막 때]]에 믿는 자들과 함께 부활해 신약 시대의 타락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판할 것이라는(루가 11장 30~32절) 엄청난 언급도 있다. 타낙에서 일관된 내용들을 보여주지 않고 서술 시각이 다른 것도 신학적 종파 간의 문제와 분쟁에서 기인한다. 구약 내에서 나타나는 관점의 경우는 정치적 상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여러 분파주의적 관점이 섞여들고 정치적으로 볼 때 이건 넣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교차하게 되는 것을 고려해 보면 관점이 일관된 것이 더 이상하다. 정리해 보면 실질적으로 구약 경전이 수립된 것은 적어도 기원전 6세기 이후, 기원전 3~4세기경, 그리고 체계적인 경전이 나타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맞으며, 그것이 정경으로 확립된 것은 1세기 말엽으로 보는 것이 정석적인 견해다. 율법서(모세오경) 같은 경우는 고대 유대인들의 종교 의례·생활 규범에 대한 교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고대 부족사회를 반영한 율법이다 보니 좋은 율법도 있지만 현대 기준으로는 반인권적인 규정도 많다. 타낙에 묘사된 총 율법의 수는 613개나 된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성경/구약 교리 요약]]을 참고. 지금도 [[하레디]]유대인들 같은 극단적인 사람들은 이를 최대한 많이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과 사도들의 신학적 논쟁을 통해 율법에서 신자들을 해방[* 부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제적 율법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완성'''시켰다고 표현한다.]시켰기 때문에, 현재 기독교에서 [[십계명]]을 제외한 구약의 자잘하고 삶의 제약이 심한 율법들은 강제로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정식 교리다. 성경은 종교적 관점을 중시하며 [[삼국유사]]와 비슷하게 신화적이나 설화적인 내용이 많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뿐만 아니라, [[페니키아]], [[아나톨리아]]등 주변국과 고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등 이스라엘을 지배한 국가들의 역사도 같이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당대에 존재했던 [[중동]]과 지중해 강국들의 흥망성쇠도 알수있다. 또한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당대의 문헌가운데서는 가장 상세하고 분량도 많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많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성경을 주요 참고자료로 쓰면서 이집트, 이라크, 이란, 그리스, 이탈리아 등의 주변국들의 문헌자료들을 교차검증하여 고대 중동사를 연구한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개역본이 아닌 현대어 본으로 된 성경을 읽을때 '''아니 이 사람이 왜 성경에 나오냐''' 싶은 사람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와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 특히 [[키루스 대제]](고레스)는 [[유대인]]을 해방시켜준 기름 부음 받은 이며,[[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가 [[에스델|에스더]]의 남편이란 것 등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페르시아]]에 호의적인 이야기가 많다. 또한 제2경전에 속하는 마카베오기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등 헬레니즘 시대의 인물들이 (부정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의 경우는 마음이 오만해졌다고 디스 당하기는 하는데, 그 구절 외에는 의외로 역사적 행적과 잘 들어맞게 설명되어 있다.] 또한 [[에스델|에스델서]]에는 [[클레오파트라]]와 그의 남편 프톨레마이오스가 언급되며, 마카베오 상권 8장에서는 고대 로마의 공화정, 원로원, 집정관 등에 대한 간단한 설명도 있다. 예언서의 경우에는, 주변 국가인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의 흥망성쇠가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기년법이 당시 그 지역에 영향을 끼치던 패권 국가를 따르는 경우도 흔하다. 이를테면 학개에서는 이 책의 배경이 다리우스 제2년이라고 1장 1절부터 밝히고 있고, 신약의 경우도 루카 복음서 3장 1절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활동 시기가 [[티베리우스]] 15년이라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역덕들이 보면 의외로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다만 성경을 가지고 중동 역사를 공부할 때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주로 서술하기 때문에 중동 전역의 역사를 아우르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명심해야되고, 비록 성경이 당시 중동의 역사를 반영은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히브리인들의 관점에서 서술되어 있기에 이점에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역사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당시의 패권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어떻게 인식되었을까?'라는 식의 의문에 대해서는 의외로 성경이 나쁘지 않은 참고 서적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똑같은 패권 국가인데 아시리아와 페르시아는 성경에서 대우가 전혀 다르다.] 물론 두 권의 마카베오기처럼 정말 본격적으로 역사를 서술할 목적으로 쓰인 책들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감안해도 성경만으로 중동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역사라는 관점에 한정해서 보자면) [[불경]]만으로 고대 인도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계점이 많다. 성경의 저자들이 실제 역사를 말하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화법이 오늘날 흔히 생각하는 역사책과는 차이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히브리인들은 전통적으로 구약을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로 나누었는데, 성문서에는 지혜 문학과[* 지혜서라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지혜문학에 속한 제2경전인 지혜서와 혼동의 여지가 있어서 이렇게 적었다.] 역사서, 시서 등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경(율법서)도 예언서도 아니라면 성문서로 취급되며, 약간 의외이게도 [[다니엘#s-1]]은 예언서가 아니라 성문서로 분류되어 있다. 유대교에선 율법서>예언서>성문서 순으로 그 권위를 해석한다. 또 타낙을 제대로 읽다보면 그야말로 방대한 분량에 걸맞은 온갖 종류의 범죄나 논란이 되는 사건들, 전쟁들이 등장한다. [[창세기]] 초부터 [[아벨|동생]]을 죽이는 [[카인]]이 나오질 않나, [[창세기]]에서 죄로 인해 멸망받았다는 [[소돔]]에서 유일하게 구제받은 롯은 의로운 인물로 대접받지만, 자신을 구해주러 온 [[천사]]의 [[등짝을 보자|등짝을 보려는]] 마을 폭도들을 달랜답시고 '''자기 딸의 등짝을 대신 보라는''' 제안을 한다거나[* 타낙은 물론 신약시대까지도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또 [[모세]] 시대에는 [[아들]] 없이 죽은 자의 유산을 [[딸]]들이 물려 받는 경우도 있다.], 이후에 배우자가 없어 대를 못 잇게 된 [[딸]]들의 의기투합에 의하여 [[근친상간]]을 '''당하게''' 된다거나 등. 그 다음에 그 딸들의 자손이 저주받으며 그들이 저주받은 이유는 저 역강간 때문인데, 여기에도 현대인의 관점으로 이해하기 힘든 연좌제가 적용된다. 죄를 지은 것은 [[롯]]의 딸들인데 그 자손들까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 다윗의 조상 룻(나오미의 며느리)은 롯의 딸의 후손인 모압족속이다. 또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따라서 인간이 선하고 정결해서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유다 지파가 쓰여져서 예수가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구원은 인간의 노력, 힘으로 이룰 수 없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이루어 졌다는 걸 알려준다.] 그 외에도 사사기에 마을 무뢰배들에게 레위인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죽임을 당하자 그 시체를 [[인수분해]]해서 각 지파에게 보냈다는 내용부터[* 물론 이 일 때문에 그 고대사회에서도 다들 충격먹는다. 사실 이 사건은 사사기(판관기)에 등장하는데, 남편은 레위인으로 율법으로 첩을 끼면 안 되고 피해 여성 역시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처가로 되돌아가 남편이 데리러 갔는데 이 역시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들이 나그네가 되어 베냐민 지파 쪽의 지역에서 숙박했을 때, 조상들의 나그네를 선대하라는 율법을 어기고 쳐들어와서 강간하려던 것을, 남편이 아내를 제물로 바치고 해가 떠서 돌아가려 할 때쯤엔 이미 죽어있었다. 완전 혼돈의 카오스. 결국 이 문제로 인해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지파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겨 결국 내전이 터지고 베냐민 지파는 궤멸당한다.] 서로 머리채를 휘어잡고 옆구리를 칼로 뿍찍뿍찍했다는 내용까지… 이 정도면 [[고어]]물을 능가한다. 또한 옛 조상이 사는 땅,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온 유대민족은 지금껏 그곳에 살던 타 민족들과의 전쟁을 벌여 땅을 점령해가는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죄가 너무나 만연하여 소돔과 고모라같이 너무나 악한 민족을 멸절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로 [[예리코의 전투]]나 가나안 정복기 등을 들 수 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에게 정복당하고 멸망당하는 가나안 족속의 죄목도, [[이집트]]에서 탈출하기 몇 백 년 전 기록인 [[창세기]]와 구약 제2경전인 <지혜서> 등지에 기록되어 있다. 흔히 유대 민족이 타 민족을 전멸시키고 노략질을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했다는 오해를 하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학살과 노략은 모두 '''극선하다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시행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심지어 [[사울]]의 경우처럼 다른 민족의 소유를 전멸치 않았다는 이유로 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이는 [[기독교]]를 비판하는 이들의 좋은 떡밥거리가 되기도 한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와 민족들은 수간, 인신공양, 문란한 문화 등 야만적인 관습이 많았는데 성경에서는 이를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낙, 특히 모세오경 중에는 이런 식으로 현대 가치관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내용이 심심찮게 나온다. 이런 서술은 고대 유대인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면 롯의 자손들이 대대로 저주를 받는 것은 당시 연좌제가 당연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의 기준으론 축복은 자손 대대로(수천 대까지) 받는 것이고 저주도 자손 대대로 받는 것이 당연했다. 그 시대야 그것이 수용될 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현대에서도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