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경/번역 (문단 편집) === [[독일어]] 번역 === [[개신교]]나 일반인의 오해와는 다르게, [[마르틴 루터]] 이전에도 [[가톨릭]]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려 한 시도는 있었다. 4세기 경 독일 [[선교사]]였던 울필라스가 고대 게르만어로 번역을 시도했고, 6세기에 [[고트어]]로 된 구약과 신약이 있었으며, 8세기에 와서 라틴어에서 번역된 마태오 복음서가 바이에른 방언으로 번역되었다. 9세기경에는 카롤루스 대제가 독일어로의 성경 번역을 독려하여 복음서들의 발췌 번역과 시편 번역이 나왔다. 물론 이때의 성경은 신구약을 통째로 옮긴 것이 아니라, [[복음서]]나 [[시편]] 등의 일부분을 번역하는 것에 그쳤다. 이후「아우스부르크 성서(Ausburg Bible)」로 알려진 구약전서는 1389년부터 1400년 사이에 나왔다. 최초의 인쇄본 성서인 「멘텔 성서(the Mentel Bible)」가 나온 것은 1466년이고 1533년까지 18판이 나왔다.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한 이후부터 루터의 번역 이전까지 18종의 독일어 성경이 탄생했다. [[마르틴 루터]]가 기존의 [[독일어]] 성경번역가들보다 특별히 더 파급력이 컸던 이유는, 이전의 독일어 번역은 불가타를 직역한 것이였던 반면, 루터는 [[불가타]]본을 기초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그리스어는 에라스무스의 라틴어-그리스어 원본 비교성서를 참조했고, 히브리어는 루터가 나중에 독학으로 로이힐린의 히브리어 교본을 학습하고 나중에 동료 교수 언어학자(멜란히톤)에게 배우기는 했지만 전문가는 아니었기에 루터본 성서는 필리프 멜란히톤을 비롯한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들과 언어학자들의 감수가 있었다. (특이하지만 로이힐린과 멜란히톤은 종조부-종손 관계로 친척이다.)] 사본을 참조해 민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번역을 도입한 점에 있다. 루터의 번역은 그 이전의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독일어]] 판본들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고, 루터가 죽기 이전에 이미 독일에 100만 부 이상 보급된다. 이는 당시 문해율을 고려하면 글을 아는 거의 모든 이가 루터가 번역한 성경을 보유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루터는 작센 선제후 궁정의 공문서 작성 필법에 따라 고지 독일어로 성경 번역을 시도했는데 이 때문에 고지 독일어가 전국으로 퍼졌고, 필체의 격식은 표준 독일어의 탄생을 불러오기도 했다. '''다만 루터 개인의 취향에 의해 정확성이 훼손되었다고 볼 여지는 있다. ''' 예를 들어 [[로마서]] 3장 28절에서는 "믿음"에 "오직"이라는 단어를 루터가 삽입하여 "오직 믿음"으로 번역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건 사실 루터의 관점으로든 가톨릭의 관점으로든 동일하지만, '정확한 번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오직'을 추가한다고 민중의 가독성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다르지만 비슷한 문제를 지닌 이야기로는 [[요한의 콤마]]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이건 사본비평학의 문제라 별개로 논해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