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남고등학교(서울) (문단 편집) === 3·17 민주의거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3·17 민주의거)] [[대한민국]]의 [[민주화]]에도 학생들이 기여한 바가 있는데, [[1960년]] [[이승만]] 독재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맞서 [[3.15 의거|일부 도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는데, 경찰이 총기를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자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여 불과 이틀 만에 최초로 서울에서 학교 단위로 일으킨 3·17 민주의거가 대표적이다. [[1960년]] [[3월 17일]], 400여명의 학생들이 "부정선거 다시하라" 등의 구호와 함께 시가지에서 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공포탄까지 발포하며 시위대를 해산시킨다. 이에 100여명의 학생이 영등포 경찰서에 연행되고, 이중 3명은 구류 처분을 받았다. 성남고등학교의 두 설립자 중 하나인 [[김석원]]은 1956년 군에서 예편한 후에는 줄곧 교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이 의거로 인해 경찰에게 불려가 "학생들 관리 똑바로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http://nasanha.egloos.com/11012395|정의는 막을 길이 없다. 애들이 올바르게 행동했는데 무슨 지도를 하란 말인가]]'''며 경찰 당국에게 윽박질렀다. 또한 교장으로 있던 당시에 예비역 소장으로 진급되었는데 조례시간에 운동장에서 학생들에게 "이 별은 [[5.16 군사정변|부패하고 정신이 썩어빠진 놈들]]이 주는 것이라 받을 수 없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받은 별을 분질러 내던졌다고 한다.[* 이런 태도에 의해 김석원은 친일파임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악질이라고 보기엔 애매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후 3.17 민주의거 기념사업회에서 갖은 노력을 펼친 끝에 [[전해철]] [[행정안전부장관]]으로부터 3·17 민주의거의 정신이 [[4.19 혁명|4·19 혁명]]에 반영되었음을 인정받고, [[서울특별시의회]]에서 '서울특별시 3·17민주의거 기념 조례'안이 통과되어 기념 조례가 제정되었다. 다만 [[대한민국 국회|국회]]에서 입법예고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안이 폐지되어 아직 [[기념일/대한민국|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는 못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