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성찬예배 (문단 편집) === 개요 === [[파일:external/www.orthodoxincheon.or.kr/30.jpg]] 정교회의 현 성찬예배 경문은 4세기까지 소급되는 기나긴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아무 변화가 없다는 것은 아니고, 러시아 정교회에서 더 오래된 [[고의식파]]의 전례를 니콘 대주교가 수정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교회의 경우도 전례의 변화가 있으며, 성 요한 금구 성찬예배 역시도 역사학적으로 말하자면 요한 금구 성인 개인에게서 전적으로 유래하는 건 아니다. 또한 아야 소피아 등의 대성당에서 행했던 전례{{{-2 (황제를 비롯한 군주들과 [[대주교]]들이 참석했으며, 하루 온종일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세]] 초반에는 온 도시를 돌며 거행되기도 했다.)}}}는 [[라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거치며 소실되었고, [[수도원]]에서 사용되던 상대적으로 짧은 전례만이 남았다.[br]그러나 이러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정교회가 상대적으로 전례 변화가 적은 건 분명하다. 이러한 동서방 차이는 현대에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고 이미 중세때도 있던 것이었는데, 가령 중세 가톨릭에 단형 영성체 관습이 자리잡은 것이 그렇다. 중세 가톨릭의 경우 '성체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현존하시므로 성체만으로도 성사의 효과는 똑같다'는 논리적 귀결을 바탕으로 단형 영성체 관습이 자리잡았다. 다만 전례 경문 변화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라틴 예법의 특성상, 교부학 연구에 의한 전례 쇄신에서는 비잔티움 예법보다 더 적극적인 편이다. 가령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도입되어 오늘날 가톨릭 성당에서 흔히 쓰이는 감사기도 제2양식은, 3세기 초 로마 전례문헌인 성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에 기반한 것이며, 동서방 교회의 감사기도 중 가장 옛날까지 소급되는 것이다.] 주일 외에 주중에 성찬예배는 특별히 고정된 요일이 아니라 특별한 축일에 드리고 있다. 자신들을 '제3의 로마'라고 지칭하며 [[동로마 제국]]과 정교회 문화권의 계승자이며 종주국이라 여긴 [[러시아]]의 경우에는 7~8시간 동안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었다. [[러시아]]에 [[성품성사|주교 서품식]] 참여 차 간 인천성당 주임신부에 의하면, 7~8시간 동안 성찬예배와 각종 기도식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꽤 있다는데 옆에서 지켜보면...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한다. [[러시아/역사]]에도 그와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러시아 [[정교회]] 내에 일대의 문화적, 종교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러시아 귀족들은 거의 이렇게 [[성당]]에서 7시간 넘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같은 정교회 식구인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 마카리오스는 러시아에서 1654~56년 동안 머무르면서 남긴 기록에 이렇게까지 전한다. >도대체 그들의 전례를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인간의 생활 거의 전부가 전례에 묶여 있는 것 같다. [[차르]], 총대주교, 귀족, 귀부인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꼿꼿이 선 자세로 전례에 참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4세기에 확립된 전례서에서 기도문들을 모두 그대로 드리기에 전례 시간이 최소 1시간 30분에서부터 강론이 긴 성직자라거나 각 현지 국가 문화에 따라 추가된 고유의 예식 혹은 추도식이나 기타 예식이 추가되면 2~3시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전례서의 내용에서 빠짐없이 다 한다. 성찬예배에 몇 번 참관해본 사람은 전례서의 어딘가가 생략되었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해당 기도문이나 곡조는 성직자 중 누군가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영성체 축복 때 주교가 주요 기도를 진행하면 사제나 보제가 옆에서 안들릴 정도로 작게 무언가를 웅얼웅얼하는데 그것이 전례서에 나온 기도나 곡조이다. 즉 전례서에서 나왔는데 참례자가 보기에 못 본 것은 예배집전자 중 누군가가 조용히 한 것이다.] 찬양송(그리스 교회 용어로는 아폴리티끼온, 러시아 교회 용어로는 트로파리온)과 같이 번역이 된 것들이 있긴 하지만, 안티폰과 스티호스(예배 초반부에 시편으로 하는 송영), 프로키메논(사도경 봉독 직전에 하는 송영) 등 [[그리스어]] 용어들이 많이 있다. 또한 아직 [[한국어]]로 개사되지 않은 성가들이 숱하게 남아 있다.[* 정교회 한국 대교구에서는 해당 그리스어 성가를 부를 수 있는 그리스인 성직자가 참여한 예배일 경우(대주교 참석이라거나 한국에 여행 온 그리스인 성직자가 참여한 경우) 그리스인 성직자가 부른다] 한편, 본기도, 예물봉헌기도, [[영성체]] 후 기도 등 가톨릭에서 매일마다 전례에서 바뀌는 부분이 정교회에서는 거의 없다. 즉, 전례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이다. 감사송조차도 시기나 지향에 따라 변하는 라틴 예법 [[미사]]와 달리 변하지 않는다. 전례력의 영향을 받는 부분은 사도경, 복음경 낭독 때와 특정 축일에 사용하는 시기송, 찬양송, 폐식 기도가 전부이다. 덧붙여, 정교회 성찬예배에서는 예비신도 전례 때 구약[[성경]] 봉독이 없다. 오직 신약성경 중 [[사도행전]]과 서신서(사도경), [[복음서]](복음경)[*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요한 복음서]]]만이 봉독된다. 다만, 사도경 낭독에 앞서 시편이나 구약의 한 구절(거의 대부분은 시편)을 낭송하는 '프로키메논'이 존재하는데 정교회 성찬예배에 있던 구약 봉독이 줄여져 남은 흔적이다. [* 실제 프로키메논은 가톨릭에서, 제1독서 후 제2독서를 하기 전에 시편을 화답송으로 부르는 것과도 대응된다.] 성직자와 신자들이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기도를 하는 부분이 곳곳에 있다. 예를 들어 보제가 '~기도합시다' 하면 신자들이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로 화답하며 이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또한 이 연도는 기본적으로 보제가 인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찬예배의 가장 핵심인 성체와 성혈을 [[정교회]]에서는 '''말 그대로 [[빵]]'''으로 주며, 성혈 또한 신자들 모두 영한다. [[영성체]]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제와 보제 등 성직자단이 성체와 성혈을 따로 영한 뒤(이때 성직자들은 지성소 안에서 지성소의 문과 커튼을 닫고 영한다), 성반(성체를 놓는 접시) 위의 성체를 모두 성혈 안에 담그고 신자들에게 성시(거룩한 숟가락)으로 떠서 영한다. 이 때 신자들은 팔을 X자로 얹고 나간다. 현재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찬예배'는 총 4종류이다.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찬예배''': 성 대 바실리오스 성찬예배와 성 야고보 성찬 예배가 거행될 때와 사순시기와 성 대 주간(월-금)의 날들을 제외하고 언제나 거행된다. 성 야고보 성찬예배가 어마어마한 시간과 성직자가 필요하기에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 흔히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그 성인이다. 크리소스토모스는 금(金)으로 된 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예식을 '성 요한 금구 성찬예배'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중요한 부분만 남기자는 의도로 정립된 방식이다. 그래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전례문이다. * '''성 대 바실리오스 성찬예배''': 1년에 10번.[* [[사순시기]]의 다섯 주일과 성 대 주간 목요일과 토요일 아침, 크리스마스 전야(24일), 1월 1일 성 대 바실리오스 축일, 그리고 신현 축일 전날 아침(1월 5일).] 위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의 것과 유사하나 사제의 봉헌문과 같은 각종 기도문들이 조금 더 길다. * '''성 사도 야고보 성찬예배''': 모든 예배의 시작. 서기 100년 안팎의 시기에 정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인류 최초로 만들어진 '예수를 위한 종교적 예식''''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에 최초의 기독교 예배라 볼 수 있다. [[마론파|마론 가톨릭]], [[시리아 정교회]]{{{-2 ([[오리엔트 정교회]])}}}, [[시리아 가톨릭]] 등 서시리아 예법 교회의 기본 성찬예배이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주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1년에 2번(성 사도 야고보 축일, 성탄대축일 다음날)에만 사용한다. 정교회에서는 주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1년에 2번(성 사도 야고보 축일, 성탄대축일 다음날)에만 사용하지만 사실 '''모든 성찬예배의 기원'''이다. 유일하게 사도가 전하였다고 하는 전례문. 전승에 따르면 1세기경 처음으로 정해졌으며 예식 안의 순서나 기도가 더하지거나 빠지거나를 반복하다가 4세기 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확정된다. 이 성찬예배가 다른 성찬예배와 구별되는 가장 독특한 특징은 신자와 사제가 제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전례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본래 성찬예배가 [[최후의 만찬]]을 유래로 하여 신자들이 모여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특징은 가장 오래된 전례임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이다. 현대의 대부분의 정교회에서도 번거로움과 현실적 이유로 많이 거행되지는 않는 실정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번역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대주교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고향인 그리스에서도 10,000개의 성당이 있다면 그 중 50개 성당에서 밖에 집전이 안될 정도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유는 정교회가 국교인 그리스에서조차 성 야고보 예배를 거행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한 예로 야고보 예식에는 서품받은 7명의 사제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있다. 교세가 작은 한국의 정교회에서는 7명의 사제가 모여야 한다는 부분은, 국내에 있는 정교회 성직자 중 과반이 넘는 성직자가 자신의 본당을 비우고 다른 본당에 모두 모여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성 야고보 성찬예배를 한다면 전국 절반 넘는 성당이 예배 집전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로 한국에서는 성 야고보 성찬예배 집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 '''미리 축성된 성찬예배'''[* 혹은 '''독백자 성 그리고리 로마의 교황(St. Gregory the Dialogue, Pope of Rome) 성찬예배'''.(이전 버전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인 신학자 성 그리고리라 되어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해당 예배는 로마의 교황인 그리고리 성인과 관련되어 있다.) 이 호칭은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성찬예배의 마지막 폐식 경문에서 성 그리고리 로마의 교황을 기리는 부분을 통해 이 예배의 시초가 성 그리고리 로마 교황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사순대재 기간 중 주일을 제외한 날에 집전하는 성찬예배로 성체 축성 부분이 없다. 이는 [[부활]]의 기쁨을 의미하는 성찬예배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애도하는 사순기간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주일에 미리 축성해서 보관한 성체로 드리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