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바스토폴 (문단 편집) === 러시아 제국-소련 시기 === 계속된 확장을 거쳐 1788년부터는 중요 해군 기지가 되었고, 상업 항구로서도 기능하게 되었다. 좀 쌩뚱맞긴 하지만 온화한 기후 덕에 [[러시아인]]에게는 바다 휴양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 곳이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마도 2번의 전투의 격전지로서일 것이다. 첫번째 전투는 [[크림 전쟁]] 중에 벌어진 세바스토폴 공방전이다. 이 전투는 1854년~1855년에 걸쳐 세바스토폴에서 벌어졌는데, [[러시아 제국군]]이 [[대영제국|영국]], [[프랑스 제2제국|프랑스]], [[사르데냐 왕국|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오스만 제국]]군에 맞서 피터지게 싸웠지만 결국 패해서 세바스토폴을 버리고 퇴각했다. 퇴각 과정에서 자신의 함대 전체를 자침시켜야 했던 건 덤. 이런 전란 속에서도 세바스토폴은 점점 발전하여 1897년에는 인구 5만 3천 명을 기록했고, [[소련]]이 들어선 후에도 계속 발전하여 2차 대전 직전인 [[1940년]]에는 인구 10만을 돌파했다. 두번째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에 일어났다. 전략적 요충지다 보니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역시 대규모 공방전이 일어난 것. 이 전투에서 [[소련군]]은 [[나치 독일]]에 맞서 처절히 저항했으나 결국 패했다. 세바스토폴은 이 전투를 기려 [[영웅 도시]]로 지정되었다. 나치의 점령으로부터 [[1944년]] 소련이 세바스토폴을 수복했을 때 인구는 1만 1천 명으로 줄어버렸다. 그러나 승전 후 세바스토폴은 재건되었고 1959년에는 인구 14만 8천 명을 기록했다. 이후 1967년에는 인구 20만, 1979년에는 30만을 기록하였다. [[1954년]]에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관할에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관할로 이전되었다. 1955년 10월 29일 세바스토폴에 정박 중이던 소련 해군 함정 <[[노보로시스크]](Новороссийск)>[* 이탈리아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함이었으나 2차대전 후 소련에 인도]가 폭발 침몰, 608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1957년에는 인근의 [[발라클라바]]라는 도시와 합병되었다. 이 도시에는 [[소련]]의 중요한 [[잠수함]] 기지가 있었다. 적 공격을 막기 위해 지하에 기지를 만들어 놨는데, 핵폭탄에 직격으로 맞아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매우 중요하다 보니 도시 주민 거의 전부가 잠수함 관련 일을 했던 적도 있었다고. 엄청난 보안이 요구되었기에 외부에 살던 가족들조차 웬만한 사유로는 방문을 허락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소련 해체|소련의 붕괴]]와 함께 잠수함 기지는 폐쇄에 들어갔고, 1996년 마지막 러시아 잠수함이 기지를 떠나면서 폐쇄가 완료되었다. 소련 시절에는 [[비밀도시|폐쇄 도시]]였다. 외부인이 방문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세바스토폴이 아니라 소련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소련 붕괴 후에는 사라졌다. 참고로 우크라이나에는 세바스토폴을 비롯하여 총 18개의 폐쇄 도시가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