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나무 (문단 편집) == 상세 == || {{{#!wiki style="margin: -6px -10px -5px" [[파일:운암산 소나무.jpg|width=100%]]}}} || 보통 침엽상록수의 경우에 중심 줄기가 곧게 일자로 높게 뻗는 것이 특징이나, 소나무는 중심 줄기가 휘어져서 구불구불하게 자라므로 각자의 환경에 따라 나무마다 구부러지는 모양이 다르다. 즉, 각 개체는 저마다 고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험한 환경일수록 이러한 구부러짐을 더 관찰할 수 있으므로 그 줄기에서 자연을 이겨내는 나무의 강한 생명력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소나무의 나무껍질은 적갈색이며 나이를 먹을수록 표면이 거북의 등껍데기처럼 갈라지는데, 이 모양이 마치 '''철갑'''(鐵甲)을 두른 듯 보인다고도 하여 한국에서는 이를 [[애국가]]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소나무는 상록수이고, 냉해(冷害)에도 강해서, 어떠한 엄혹한 추위에도 이를 견뎌내고 힘을 뿜어내는 불굴의 기상을 보여준다고 하여 조선의 선비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나무이다. 율곡 [[이이(조선)|이이]]는 세한삼우(歲寒三友)[* 세월의 추위를 함께 할 세 명의 벗을 말한다.]로서 송(松) · [[대나무|죽(竹)]] · [[매화나무|매(梅)]]를 꼽았고, [[윤선도]]는 [[시조(문학)|시조]] 오우가에서 소나무를 벗으로 여겼으며,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어려울 때 도와준 벗(友)을 위해 그 고결함을 기리는 마음에서 겨울철 소나무를 그려주기도 했다. 또한 전해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꿈에서 소나무를 보면 벼슬을 할 징조이고 솔잎이 무성함을 보면 집안이 번창하며 꿈에서 송죽 그림을 그리면 만사가 형통한다고 하며, 반대로 꿈에 소나무가 마르면 병이 날 징조로 해몽하기도 한다. 이렇듯 소나무는 조선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록수인데다가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하게 푸르니 '''절개와 의지'''의 상징으로 여겨져 충정, 지조와 같은 [[유교]]적 덕목과 엮어서 많은 사랑받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왕이 지나가는데 가지를 들어 길을 비켜주었다고 높은 벼슬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보은 속리 정이품송]]도 있다. 한국의 [[애국가]]에도 바람, 서리에 굴하지 않는 절의와 기개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군가]]나 [[민중가요]]에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가사가 나온다.[* 소나무가 메인 소재인 [[http://youtu.be/5aZ54f_LlBA|푸른 소나무]]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든지] 또한 오래 사는 나무로 알려져서 [[장수]]를 나타내는 [[십장생]]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한반도에서는 예로부터 소나무를 귀히 여겨 숲을 가꾸고 함부로 벨 수 없게 했으며 국가의 허락을 맡고 나서야 벌목이 가능했다.[* [[삼국시대]] 때에는 마을 주변에 소나무 숲을 가꾸었고 [[고려시대]]부터는 함부로 벨 수 없었으며 국가의 허락을 맡고 나서야 벌목이 가능했다. [[조선시대]]에는 조정, 관아에서 봉산(封山), 금산(禁山)이라고 하여 나무를 베지 못하는 구역을 정하기도 했다. 단순한 규제 외에도 비변사와 각 지방 군관을 동원한 대규모 나무 심기를 [[http://egloos.zum.com/sldn84/v/2697424|시행]]하였다. 1788년에는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산림법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8248&cid=46631&categoryId=46631|송금사목]]을 제정했다.] 또, 주민들끼리 스스로 송계(松契)를 조직해 함부로 나무를 베거나, 입산하는 사람을 견제하기도 했기 때문에, 금산 구역이 아니라고 해도 소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었다.[* 그래서 관청에서 관리하는 소나무 목재는 값이 어마어마했다. 이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다. 정약전은 저서 《송정사의》에서 소나무 베기를 금지하기보다는, 사유지든 국유지든 소나무를 심고 가꾸면 세금 감면 혜택을 주며 식목을 장려하고, 산허리 위로 화전을 금지함이 차라리 좋지 않겠느냐는 요지로 비판했다. 그러나 동생 [[정약용]]은 형의 주장을 두고 [[목민심서]]에서 평하기를 "바람이 불면 솔씨가 떨어져 자연히 송림을 이루니 가꾸기만 하며 되지 뭐하러 심는가?" 라고 하였다. 대규모 식목(植木)에도 불구하고 목재로 자라나는 데 장기간이 걸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마을을 수호하는 [[신목]] 중에서도 소나무는 [[느티나무]] 다음 가는 비중을 차지한다. 소나무 가지는 부정을 물리치고 제의공간을 정화하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출산 때나 장(醬)을 담글 때에 치는 금줄에 [[숯]]·[[고추]]·[[종이|백지]]와 함께 소나무 가지를 거는 것도 잡귀와 부정을 막기 위한 것. 생태학적으로는 소나무는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뜻하고 적당히 건조한 기후와 적당한 햇빛을 좋아한다. 나무의 높이는 25~35 m이고 뿌리, 잎에서 [[타감작용]]을 일으키는 갈로탄닌이라는 천연 제초제를 분비하는 특성 때문에 [[진달래]][* [[진달래]]는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Allelopathy'에 의한 강력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타 식물의 생장을 억제한다.]와 [[철쭉]] 정도 외에는 소나무숲에서 함께 자랄 수 있는 식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소나무를 심으면 주변에 [[잡초]]가 잘 안 자란다.''' 대신 입혀놓은 [[잔디]] 떼도 죽기 때문에 [[무덤]]가에는 웬만하면 소나무를 심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 무덤가에 자주 심는 나무가 [[측백나무]]이다.] [* 심지어 자신의 동족도 타감작용에 의하여 소나무 숲에서는 소나무 묘목조차 잘 자라지 않는 지경이다. 이것은 소나무가 양수(陽樹)인 점도 한몫한다. 성목의 그림자에 가려 유목(幼木)이 충분한 햇빛을 받지 못하면 죽기 때문에 캐노피가 완성된 소나무 숲에서는 소나무 유목이 자라기 힘들다. 그래서 산림과학에서는 송림을 동령림(同齡林), 즉 수령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숲으로 본다. 동령림은 대부분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임에도 불구하고 극양수인 소나무는 예외라는 것. 그런데 무덤가에 소나무 대신 측백나무를 심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주나라에서는 무덤가에 심는 나무도 신분에 따라 정해졌다. 백성의 무덤에는 [[버드나무]]를 심었고, 이후에도 신분에 따라서 나무가 갈리다가 제후의 무덤에 심는 나무가 바로 측백나무였다. 그리고 소나무는 황제를 위한 나무였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소나무는 가장 고귀한 나무였기 때문에, 황제에게 걸맞는 손재라고 해서 황제릉 주위를 송림으로 둘렀다. 이 영향인지 왕릉은 기본적으로 송림을 기본으로 하였다. [[경주시]]에 있는 [[신라왕릉]]은 대부분 송림으로 둘러싸여 사진가의 단골 출사 장소가 되었고, [[고려왕릉]]도 북한의 열악한 관리 실태 때문에 찾아보기 어렵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송림을 조성했다. [[조선왕릉]]도 송림을 원형으로 해서 다른 상록수가 섞였다.이렇다보니 양반 이후의 집안 무덤에서는 원래 있던 소나무 곁에 조성하는 경우는 별 수 없기야 했지만 없던 소나무를 일부러 심어서 묘원을 조성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행위였고, 자연스럽게 소나무보다는 측백나무를 선호했다. 사실 소나무가 근처에 있는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한다고 하지만, 묘지목은 기본적으로 무덤에 대놓고 심는 것이 아니라, 무덤 주위를 빙 둘러서 경계를 삼는 것이기 때문에 묘역이 지나치게 좁지 않다면 소나무의 영향력이 봉분이나 그 인근까지 미칠 일이 없다.] 소나무는 한국에서야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이지만, 우리가 적송(赤松)이라고 부르는 ''Pinus densiflora'' 한정으로는 국제적으로 분포가 한정적이다. 한국을 포함해서 일본, 중국 동북부, 러시아 동부에서만 자생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희귀 식물로 취급받아서 보호종이 되었다. [[http://ecotopia.hani.co.kr/?document_srl=222951&_ns=r2&mid=media|#]]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과는 달리, 과거 선사시대의 만주, 한반도에는 소나무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선사시대의 만주, 한반도에는 참나무와 오리나무가 많았고, 고려시대에는 주로 느티나무를 목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지속적인 벌목, 즉 산림 파괴가 계속되었고, 이에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가 숲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