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년애 (문단 편집) === 일본에서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90px-ShudoMonogatari.jpg|width=100%]] ||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서 [[와카슈도]](혹은 슈도)가 존재했다. 정확히는 와카슈도(若衆道)의 약칭이며, 일본에서 남성 [[동성애]]의 한 가지 형태로 전해진다. 헤이안 시대에 공가[* 덴노를 직접 섬기는 일본 조정의 신하 겸 귀족이다. 후에 무로마치 시대에 사무라이 계급이 태두하면서 몰락하고 에도 시대 말기에 도막파를 지원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나 중[* 불교의 가르침에 여자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 있어도 남성끼리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는 이유로]의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이 점차 시대가 지나면서 [[전국시대]] 무렵에는 무가에서도 당연시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주로 신분이 높은 무사가 가신의 아들이나 전도유망한 젊은 이를 코쇼([[小]][[姓]])로서 자신의 수발을 들게 했는데, 대개는 다이묘의 중도의 상대는 이 코쇼였다. 대표적인 예인 [[오다 노부나가]]의 경우, [[마에다 토시이에]] 및 [[모리 란마루]],[* 그러나 [[모리 란마루]]가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노부나가]]의 중도의 상대역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명확히 증명되지 않고, 설만 존재한다.]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카게카츠]], [[다테 마사무네]] 등. 예외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를 행하지 않았는데, 히데요시 본인은 하층민 출신이라 이런 '높으신 분들의 취미'에 대해 처음부터 잘 몰랐기 때문. 대신 여색 자체를 즐겼다고 한다. 가신들이 바친 소년들에게 '''누나 있냐'''고 물어볼 정도. 이러한 남색풍습은 에도시대까지 이어졌으나[* [[조선통신사]]들의 기록에도 자주 등장한다. 통신사 서장관으로 갔던 신유한이 보고 놀라서 일본측 통역 [[아메노모리 호슈]]에게 이거 너무 괴이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메노모리 호슈는 "'''학사께선 아직 그 즐거움을 모르시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신유한은 혀를 차면서 "유학자라는 인간도 저 모양인데 민간인은 말해 뭐하겠나"라고 평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의 성관념이 유입되어 소년애가 지탄의 대상이 되며 양지에서 사라졌다. 다만 현대에도 [[보이즈 러브]]니 [[오토코노코]]니 하는 식으로 남색을 다룬 서적이나 영상물들이 많기 때문에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수있다. 당시에는 전혀 이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 문서상에서도 이 슈도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사실 당시 일본의 성 풍속은 현대 일본의 관점에서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으며, 현재 일본의 성 풍속이 보편화된 것은 메이지 이후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에는 스승과 제자의 동성애 관계가 존재했고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나 [[로마]] 시대에도 귀족들의 취미 중 하나가 소년과의 동성애를 즐기는 것이었으므로, 이러한 소년 남색이 일본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의 성문화를 짧게 언급하며 "일본 성인 남성은 남색을 즐길 때에도 절대 수동적인 역할은 맡지 않으며, 여성의 입장에 놓이는 것은 반드시 소년이어야만 한다"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에서도 성인 남성(공)과 소년(수)의 관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