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문화 (문단 편집) === 반체제 문학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솔제니친]]과 같은 반체제적 작가들은 작가 동맹에서 파문당하고 [[닥터 지바고]]처럼 체제 자체를 비판하는 소설은 출간이 철저히 금지되었으며 검열을 통과한 출판물들도 반체제적 요소들은 철저하게 걸러졌다. 비록 스탈린 사후에는 검열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이후에도 소련 당국은 체제에 반하는 내용은 주기적으로 검열을 이어나갔다. 따라서 반체제 작가들은 익명으로 [[사미즈다트]](самиздат)로 작품을 유통해야 했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집권 시절 동안에는 어느 정도 체제 비판이 허용되었다. 예를 들어 [[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소련 작가동맹이나 당국으로부터 압력을 받았지만 직접적인 탄압은 없었다. 훗날 소련 반체제 문학의 거장으로 이름을 알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흐루쇼프 집권기인 1962년 11월 강제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명작인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의 출간을 허가받아 소련 문학잡지였던 "노비 미르"에 출간할 수 있었다.[* 뒷이야기로 노비 미르의 편집장이었던 처음 작품을 받았을 때 당시 편집장이였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는 솔제니친이 쓴 수용소 생활의 자세한 묘사에 감명받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직접 해당 작품을 출간시켜 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한다. 당시 중앙위원들은 대부분 소설의 출간에 반대했지만, '''[[니키타 흐루쇼프]]'''가 작품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결국 출간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64년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집권하면서 소련은 다시 검열을 강화했다. 브레즈네프 시기 반체제 예술작품을 출간했던 예술가들은 지속적으로 [[KGB]]의 감시를 받거나 당국의 심기를 거스를 경우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강제로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솔제니친이나 [[예브게니 옙투셴코]], 이오시프 브로드스키 등 반체제 예술인들이 해외로 망명한 것 또한 이 시기였다. 소련 당국에서 검열이 완화된 것은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이후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언론 및 출판의 자유가 완화된 이후의 일이었다. 대숙청과 즈다놉시나가 종료되고 스탈린 격하 운동이 벌어진 뒤에도 문인들이 느꼈던 심리적 압박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영국에서 <러시아 문학사>를 저술한 드미트리 스뱌토폴크미르스키(Дми́трий Петро́вич Святопо́лк-Ми́рский)는 러시아 혁명 이후, 소련의 문학 작품들은 상당수가 서랍 문학, 즉 시를 몰래 써놓고 책상 서랍 밑에 보관하는 형태로 창작과 유통이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참고로 미르스키는 좌익 [[유라시아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했으며 1932년 영국에서 소련으로 귀환해 활동하였으나, [[대숙청]] 시기인 1939년 간첩 혐의로 노동수용소로 끌려가 사망했다.] 하지만 작가들도 당국에 순종적이지만 않고, 자신의 작품을 온전하게 출간시키기 위한 다양한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수기나 타자기 등을 이용해 책을 직접 유포하는 사미즈다트가 있었다. 또한 몇몇 작가들의 경우 지인들을 통해 서방으로 수기 원고가 반출되어 출판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 가지 예로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필한 자서전의 경우 흐루쇼프가 KGB로부터 압력을 받아 그동안 작성했던 원고를 넘겨달라고 하자, 아들이었던 세르게이 흐루쇼프는 미리 복사본을 만들어 두어 KGB에게 원본을 넘겨주고 지인들을 통해 복사본을 서방으로 반출시켜 반드시 출판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그 결과 흐루쇼프의 자서전은 본인이 사망하기 1년 전인 1970년 서방에서 출판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