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종교 (문단 편집) == [[불교]] == [[불교]]의 비율은 소련 전체 인구로 따지면 1% 안팎을 맴도는 수치였지만, [[불자#s-1|불자]]들은 한 지역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불교 역시 무작정 탄압을 가할 수는 없었다. 특히 1924년까지 우방인 [[몽골]]의 [[복드 칸]]이 버젓이 살아있었고, [[투바 인민공화국]]은 [[불교 사회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에 일단은 불교의 권위를 인정해줬다. 그러나 [[스탈린]]이 집권하자 상황이 좀 달라졌는데, 스탈린이 종교 탄압 정책을 실시하려 하자 불교도들은 불교는 [[무신론]]이라고 주장했으나, [[러시아]]는 옛날 옛적에 [[몽골 제국]]에게 [[타타르의 멍에|당한 게]] 있으니 [[종교적 소수자|더욱 심한 탄압을 당했고]], 이슬람이나 정교회는 전시용이라도 사원이 남았지만 불교는 그런 거 없이 사원은 전부 파괴당하고 [[승려]]들은 모두 [[대숙청]]의 피해자가 되어 사형당하거나 [[굴라크]]에 끌려갔다. [[칼미키야 공화국|칼미키야 자치주]]는 아예 해체되었으며 칼미크인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였다. 또한, [[환생]]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의 불교 지도자인 '함보 라마'는 1930년을 마지막으로 환생이 중단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수많은 몽골계 병사들이 희생당하면서 이에 대한 보상 차원으로 스탈린은 두 곳의 [[사찰]][* [[울란우데]] 근교의 이볼긴스키 사원과 [[자바이칼 지방]]의 아긴스키 사원] 건립을 허가했으며, [[흐루쇼프]] 집권 이후에는 '함보 라마'의 부활과 동시에, 함보 라마의 정권 협조[* 당시 [[달라이 라마 14세]]가 함보 라마의 공식적 부활을 선언했으며, 이후 함보 라마는 [[소련 공산당]] 부랴트 지부와 부랴트 공화국 정부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를 대가로 불교 대학을 건립하였다. 1976년에는 아예 [[달라이 라마 14세]]가 소련을 방문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