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련군/차량 (문단 편집) === T-37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37A_‘2’_-_Park_Patriot.jpg|width=100%]]}}} || || '''Т-37''' || |||| || || 전체길이 ||3.75m|| || 전체너비 ||2.10m|| || 전체높이 ||1.81m|| || 중량 ||3.2t|| || 탑승인원 ||2명|| || 최대장갑수치 ||9mm|| || 최고출력 ||40hp|| || 최고속도 ||35km/h|| || 항속거리 ||185km|| || 주무장 ||7.62mm [[덱탸료프 전차기관총|DT]] 기관총 (580발)|| T-27의 빈약한 험지주파 능력을 체감한 소련군은 소련의 설지, 빙지, 습지를 주행하기 위해서는 수륙양용 기능을 가진 경전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N. 코지레프 수석 엔지니어가 설계한 [[T-33]] 경전차를 개발하여 테스트하였다. 그후 이 전차의 개량형인 [[T-41 경전차]]가 개발되는데,[* 이 부분에서 [[바이마르 공화국]]과의 기술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전 경전차인 T-27의 엔진, 주행계통, 무한궤도를 이용하여 많은 부분에서 T-27과 호환이 되었지만, 소련 군부는 이 차량을 소량 생산하는데 그치고 새로운 전차 설계에 들어간다. 소련은 당시의 최대 전차회사 중 하나이던 영국 비커스 사에 주문을 의뢰했고 비커스 사가 개발한 수륙양용전차의 라이센스 생산을 고려했다. 비커스의 수륙양용전차의 성능은 우수했지만, 현가장치가 소련의 지형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높으신 분들]]은 [[르노 AMR-33/35|ARM-35]]에도 부착된 [[홀스트만 현가장치]]를 채택하여 N. 코지레프 수석 엔지니어에게 재설계를 명했다. 그리하여 1932년 첫 차량을 생산해내고, 1933년 대량 양산에 들어가며 그후 4년동안 총 1200여대가 생산되었다. 이 전차는 소련군의 4개 계열 전차 계획에 따라 보병 지원용 경전차([[T-26]]), 쾌속 기병전차([[BT 전차]]), 보병 지원용 중형전차([[T-28]])와 더불어 정찰용 경전차로써 운용되었고, [[폴란드 침공]]과 [[겨울전쟁]]에도 참전하였다. [[독소전쟁]] 초기에도 물량만 많았던 소련 전차부대에서 사용되었으나 빈약한 장갑과 무장이 크나큰 문제가 되어 광속으로 1선에서 퇴출되었다. 하지만 1944년까지 후방 방어나 훈련용으로 계속 사용되긴 했다. 여담으로 폭격기에 공수투하하려는 소련 공수부대의 노력이 있었고, 일부 차량을 핀란드군이 29대, 루마니아군이 약 25대, 그외 독일군이나 헝가리군이 노획하여 사용하기도 했다고 하며, 스웨덴과 터키도 각각 1대씩 굴려봤다고 한다. 2011년에는 1941년 행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