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병철 (문단 편집) === 검찰 ===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당시, 정부가 공개수배한 50여명 중에 조폭 청부폭력 전문 조직 동아파(派) 두목 문병현은 조직폭력 보량파와 폭력을 휘둘러온 혐의로 그동안 추적을 받았다. 당시 소병철 검사는 석 달간 추격전을 펼치면서 장기 합숙도 했다고 한다. 추격 과정에서 문병현은 집지붕을 타고 도망간 적도 있다. 계속된 수사 끝에 공개수배 조폭 중 첫번째로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횟집에서 동아파의 두목 문병현을 붙잡았다. [[ 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147919901207m1232&set_date=19901207&page_no=23|#]] 사건 이후 조선일보 이창원 기자가 ‘폭력두목 추적 석달’이라는 칼럼으로 추적기를 실감나게 전달했다. 지난 석달동안 청부폭력조직「동아파」의 두목 문병현(文炳鉉)(일명 문(文)계남)을 쫓았던 서울지검 서부지청 소병철(蘇秉哲)검사는 수사관으로부터체포소식을 듣자 그동안 겪었던갖가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지명수배 직후 문(文)이 도피한줄은 알았지만 그래도「혹시나」싶어 서울마포구대흥동에 있는 문(文)의 집앞에 월세방을 얻어놓고 수사관들과 함께「합숙」을 할 때였다.「일요일까지 경찰이 잠복해 있으랴」고 생각했던지,어느 일요일 아침 문(文)이 두리번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급히 112 순찰차를 부르고방안을 덮쳤으나 밖의 낌새가 이상한것을 알아차린 문(文)은 이미 집지붕을 타고 달아난 뒤였다. (중략) 한달여가 지나면서 서울과 경기도에서 3곳의카바레—스탠드바등을 운영하던문(文)이 도피자금에 쪼들리자,가게를 헐값에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소(蘇)검사는「꼭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했다.『신념을 가지고 끝까지쫓으면 범죄인을 잡는 일이 불가능하지는않습니다.막상문(文)을 붙잡고보니 그도 그동안의 도피생활에지칠대로 지친듯,차라리 후련하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중략) 『범죄와의「전쟁」중인데 쉴틈이 있나요.』도수높은 은테안경을매만지며 소(蘇)검사는 조용히 웃었다. 소병철은 평검사 시절부터 불법 비리, 뇌물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서울지검 서부지청 특수부 근무 당시 불법건축물에 대한 준공검사조서를 허위로 작성해 준공 필증을 받도록 해준 건축사 34명을 적발하며, 불법을 자행한 관계 공무원, 건축주, 건축브로커, 건축사들을 수사했다고 한다.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2611#home|#]] 1990년 서울지검 서부지청(현 서울서부지검) 특수부 당시, 신문ㆍ잡지 등에 구인 광고를 내 이를 보고 찾아온 미성년자 또는 부녀자 513명을 사창가나 유흥업소에 팔아넘긴 인신매매 최대 조직을 수사했다.[[https://newslibrary.chosun.com/view/article_view.html?id=2137519900823m1198&set_date=19900823&page_no=19|#]] (2020년 총선 인재영입 4호 발표 인터뷰에서 검사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고 일화를 소개했다.[[https://www.news1.kr/articles/?3815794|기사]] 또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건물소유주와 입주자들을 협박해 헐값에 건물소유권을 넘겨받거나 임대보증금을 포기하게 하는 수법이 횡횡했는데, 서부지청 특수부에서 근무하면서 악질적인 일당들을 소탕하는데 일선에 활약했다고 한다.[[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500660.html|#]] 대검중수부는 1991년 서울시가 개발제한구역이었던 강남구 수서-대치지역 공공용지 3만 5500평에 아파트를 건립하겠다는 26개 주택조합에 아파트 건축허가를 내주는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을 본격 수사하기 위해 수사초기에 실력 좋은 검사들을 차출해서 수사팀을 대폭 보강하기로 했다. 대검중수부에서 검사를 차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차출을 기대하는 검사들이 여럿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당시 서부지청 특수부에 근무하고 있던 소병철은 대검중수부에 차출되면서 대검중수부에 최초로 파견된 검사가 됐다고 한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890#home|#]] 소병철은 파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미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일했다. 바다 건너간 곳에서도 일만 했는지 성과가 좋았고 한인들 사이에서도 두루두루 평가가 좋았다고 한다. 마약범죄가 국제화ㆍ조직화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미국, 중국, 일본,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6개국 마약수사 실무자들 간에 24시간 핫라인(긴급직통전화)이 설치되었는데, 당시 소병철 주미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이 대한민국 대표로 참여했다.[[https://m.lawtimes.co.kr/Content/Info?serial=3062|#]] 또 한국ㆍ미국 간 범죄인 인도를 처음으로 성사시켰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은 더 이상 한국 범죄인들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 한씨 케이스를 시작으로 체계적으로 수립된 채널을 통해 미국에 숨어 살고 있는 범죄자들의 한국 강제송환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히면서 한미 간 사법공조체제를 두텁게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았다.[[ https://news.koreadaily.com/2001/10/10/society/generalsociety/150476.html|#]] 주미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을 하는 동안에 한인들 사이에서 제법 평가가 좋았다고 한다. 교포들 거점 지역인 LA, 시카고 등에 가서 교포들을 대상으로 한국 법률 설명회와 민원 상담을 했고, 그 중 하나가 법무부가 「수형자 이송에 관한 법률」을 추진중일 때 한인교회를 돌아다니면서 법률안 진행과정을 직접 설명하고 다녔기 때문인데. 한인 재소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도 좋았지만 어쨌든 법무협력관이 한인들 의견도 잘 들어주고 제도 취지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니깐 좋은 인상을 줬다고 한다.[[https://news.koreadaily.com/2001/05/21/society/generalsociety/137770.html|#]] 노무현 정부 때 ‘법무·검찰 개혁안’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주책임자가 당시 소병철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이었다. 이 개혁안은 ‘법무·검찰의 중장기 개혁 로드맵’을 제시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법무ㆍ검찰에 대한 큰 그림이 잘 담겨있어서 문재인 정부때도 이 개혁안은 검찰개혁 방안으로 충분히 활용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평가가 계속 이어졌다. 개혁안은 300페이지가 넘는 책자로 엮었는데 노무현사료관에 <희망을 여는 약속>이라는 책으로 보관되어 있다.[[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087|#]] 소병철 의원이 피감기관 상대로 질의하면서 기관장들한테 댓글 좀 읽으면서 국민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제대로 파악하라고 지적하던데, 무슨 일이든 국민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댓글에서 국민 여론을 확인하는 편인 듯) 이 마인드는 검사생활부터 이어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병철 의원이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당시 법무부가 민원처리 우수기관으로 선정되었는데, 민원인 입장에서 업무처리가 이뤄지도록 지속적으로 변화를 노력해왔기 때문에 이 성과를 엄청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국민 대다수가 법무부를 어렵고 딱딱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생각했기 때문에 민원처리 우수기관 선정이 의외였으며 법무부가 국민에게 다가가는 변화를 추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1222027016|#]]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있을 때 대통령이 이명박이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부처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태도를 질타했다고 한다. 부처들이 업무보고만 하면 된통 깨지기 일쑤였는데, 법무부는 극찬을 받으면서 여러 관심을 모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이거야!”라면서 좋아했다고 한다.[[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321010308270620020|MB칭찬포인트..기사까지 남]] 칭찬했던 포인트가 보고서 용지가 컬러가 아니라 흑백으로 인쇄되어 있어서 였는데, 이 대통령이 이유를 묻자 소병철 기획조정실장이 “컬러로 인쇄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 비용을 아끼기 위해 흑백으로 인쇄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법무부가 실용적으로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다음 업무보고 내용들도 순탄하게 잘 마무리되면서 큰 기대하겠다는 격려도 했다고 한다. 민원에서는 민원인 중심,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했다. 특히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일하면서 아동ㆍ청소년 대상의 성폭력범죄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무조건 구속해 수사하게끔 하고 동종 전과범에게는 최소 10년 이상의 중형을 원칙으로 정했다.[[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30901070127102004 |#]] 출소자들의 자립기반, 사회적응 등이 잘 이뤄지고 사회복귀 기회가 다양하게 주어지면 재범률이 낮다는 통계들이 있는데, 대구고검장 당시, 출소자들의 사회복귀를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대회를 열고 17개 후원회에 회원 550명의 조직을 만들어 출소자의 사회복귀와 재범률 줄이기에 앞장섰다고 한다. 출소자들의 자립기반을 제공하고 사회복귀에 희망을 주었다고 지역사회, 시민단체에서 고마워했다고 한다.[[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3460|#]] 또 대구고검장으로 있으면서 검찰의 새로운 역사를 하나 썼다. 전국 검찰청 최초로 임신한 여직원을 위한 휴게실 설치했다. 점점 여성 검사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그 당시에는 출산이나 육아휴직 제도가 미흡해서, 적어도 휴게실은 필요했을 때였다. 그래서 당시 소병철 대구고검장이 임신한 여직원 휴게실을 마련하자고 해서 휴게실이 만들어졌다. 소병철 대구고검장이 휴게실 위치로 지정된 곳을 사전 방문했는데, 휴게실 위치가 건물 외진 구석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담당 직원에게 휴게실 위치는 중앙통로 가장 좋은 곳으로 옮기도록 하고 임신 중인 여직원들이 사용해야 한다면서 친환경자재, 온돌바닥 등등 이용자에 맞춰서 인테리어해 줄 것을 직접 지시했다고 한다. 대구고검 여성 휴게실이 다른 검찰청은 물론 대구경북지역의 직장내 모성 보호 시설의 모범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이어지면서 대구고검의 자부심이었다고 한다.[[https://idaegu.co.kr/news/articleView.html?idxno=82415&replyAll=&reply_sc_order_by=C|#]] 2012년 경북대가 명예박사 학위수여를 수여하며 “대구·경북 지역의 출소자 후원시스템을 강화하고 [[6.25 전쟁]] 낙동강 전투 학도병 어르신들을 최초로 검찰청에 초청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앞장서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호남 출신 검찰 고위 인사에게 소위 TK의 산실 경북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해 뜻깊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한다.[[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121030/50483247/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