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하 (문단 편집) ==== 성야소하, 패야소하[* 성역소하패역소하(成亦蕭何敗亦蕭何)라기도 한다.] ==== ||[[파일:F0guhoU.jpg|width=100%]]|| || '''한신을 유인해 죽이다'''[* 원곡선(元曲選)에 실린 그림] || 그렇게 무탈하게 지내던 와중, 기원전 196년, 한나라를 떠들썩 하게 했던 [[진희(한나라)|진희]](秦豨)의 반란이 일어났고, 유방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떠났다. 이때, 관중에 있던 한신은 진희의 반란에 동조하여 내부에서 협력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미 초한전쟁이 이어질 시기부터 "나 왕 시켜 주라" 등등 유방의 어그로를 끌기도 했고, 그 이후에도 유방에게 사로잡혔다가 풀어지는 등 분위기가 대단히 심상찮았기에 선수를 쳐보려고 했다는 이야기. 이 반란 모의의 신빙성이야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이 시점에서 [[고황후 여씨|여후]](呂后)는 한신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한신의 용병술이 워낙 대단하니 함부로 적대 의사를 표방하고 잡으려고 하면 되려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이때 여후가 계책을 물어본 사람이 바로 소하였다. 평생 행정만 맡아온 소하에게 참으로 뜬금없는 요구같긴 하지만 한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보고 천거한 사람이 소하니, 소하만큼 한신이라는 인물을 잘 파악하는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소하는 이미 진희가 패배했다고 거짓 정보를 꾸몄고, 한신에게 "축하하러 오는 게 신변에 좋을 것"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이에 한신은 의심없이 궁으로 나왔다가, 여후가 준비해놓은 무사에게 사로잡혀서 결국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한신은 소하의 추천으로 인해 한나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소하 때문에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 송(宋)나라 사람 홍매(洪邁)는 자신의 저서인 용재속필(容齋續筆)에서 "한신이 대장군이 된 것은 소하가 천거했기 때문이요, 이제 그가 죽음을 맞이한 것도 소하의 [[배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항간에 '''성공하는 것도 소하에게 달려 있고, 실패하는 것도 소하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 떠돌게 되었다(信之爲大將軍, 實蕭何所薦, 今其死也, 又出其謀. 故俚語有成也蕭何敗也蕭何之語)"고 기록하였다.[* 하지만 소하의 배신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이제껏 한신은 계속해서 사망 플래그를 쌓아왔던 데다가 하필이면 여후는 위험분자는 못봐주는 성격이었다. 사실 소하는 어쩌다 끼인 것일 뿐 실제 한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사실상 여후다. 거기다 여후는 고제가 없을 때 전격적으로 한신을 처단한 것이고.] 유방은 소하가 한신을 죽이는 데 한몫 했다는 말을 듣고, 소하를 '''상국(相國)에 봉하고''' 5천 호의 식읍을 더하고 호위대를 붙여주었다.[* 유후세가의 기록을 보면, 유방이 소하를 상국에 임명하도록 권한 사람은 장량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