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하 (문단 편집) ==== 처세술로 위기를 모면하다 ==== 소하가 승상의 자리에 오르자 여러 사람들이 소하를 축하하였다. 헌데 유독 소평(召平)이라는 사람만은[* 진나라 시절엔 동릉후까지 맡아봤던 꽤 거물이었는데, 이때는 관직을 다 잃고 참외 장사를 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 참외를 동릉과라고 놀렸다. 이 참외는 큼직하고 맛도 굉장히 훌륭했다고 한다.] 축하를 해주기보다 소하를 걱정해주었다고 한다. 소하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딱히 기분상해 소평을 쫓아냈다는 말은 없다. 소평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거나 아니면 새겨듣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텐데, 소하의 성정을 생각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새겨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방이 형양-성고에서 항우군을 상대로 무한방어를 시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군량이 기일까지 운송되지 못하자 유방이 서찰을 보내왔는데, 이상하게도 서찰에는 질책이나 독촉은 하나도 없고 안부만 묻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소하가 이상하게 여기자 포생(鮑生)이라는 선비가 곁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대왕께서는 승상께서 변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의심을 풀고자 한다면 자손들을 대왕이 계신 최전방으로 보내 군무를 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의심이 풀릴 것입니다." 이에 소하는 군량을 조달하면서 자식들을 유방 곁으로 보냈고, 유방은 의심을 풀었다. 이후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가 된 유방은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러 떠나게 된다. 유방은 떠나기 전에 소하에게 별 이유없이 후한 상을 내리고 자유로이 부릴 수 있는 호위대를 하사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소하에게 소평이 귀띔을 해주었다. >"화가 승상의 몸에 미친 듯 합니다. 지금 황제께서는 반란군을 소탕하느라 친히 외지로 출정하셨는데, 승상은 큰 고생을 하지 않고도 상이 늘어났으니 이게 과연 좋은 일이라고 보십니까? 지금 한신이 반란한 일 때문에 황제께서 크게 놀란 상태인데, 지금 여기서 '호위대'를 하사하신 것이 과연 좋은 의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이에 소하는 곧바로 식읍의 추가와 호위대를 사양하고, 모든 가산을 황제의 군비로 사용하게 했다. 이에 유방은 의심을 풀었다. 이후 기원전 195년, 이번에 유방은 구강왕 [[영포]](英布)의 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다. 이때 유방은 소하에게 사람을 계속 보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 보았는데, 이 모습을 본 소하의 주변 사람이 그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승상께서 멸족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황제가 그대를 여러 번 떠보는 것은, 그 명성이 너무 엄청나서 그런 것입니다. 일부러 명성을 떨어뜨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에 소하는 일부러 백성들의 집을 싸게 사들여 명성을 더럽혔다. 이에 유방은 어느 정도 안심을 했는데, 실제로 귀환하는 길에 보니 백성들이 "승상이 강제로 백성들의 집을 사들입니다. 벌써 수천 명이 집을 빼앗겼습니다"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이를 믿게 되었다. 유방은 백성들이 무더기로 보낸 탄원서를 보고 허허 웃더니 "승상이 백성들의 민심을 어루만짐이 이런 것이었단 말이오?"라고 하면서, 소하에게도 그것을 보여주며 직접 백성들에게 사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눈치를 줬는데, 이때 소하는 질책당하는 거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에 평소 구상하던 정책을 이야기할 기회라고 여겼다. 그래서 진나라가 만든 황제 전용 사냥터(상림원)를 개방하여 백성들의 농지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주청을 올렸다. 그러자 유방 입장에서는 소하가 자신이 한 짓은 발뺌하면서 오히려 황제의 재산을 이용해 자기 명성을 올리려 한다고 오해하였고, "네놈이 어지간히 뇌물을 받아먹었구나, 감히 내 상림원을 상인 놈들에게 팔아먹을 속셈이냐?"라며 괘씸하다면서 소하를 옥에 가둬버린다. 며칠 후, 왕씨(王氏) 성을 가진 위위[* 衛尉. 궁궐의 경비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이다. [[고관대작]] 중의 하나이며 녹봉은 2천 석 정도 된다.]가 나서서 소하에게 내린 처벌이 너무 과하다고 간언한다.[* 앞의 포생과 소평이 조언해준 것도 그렇고, 소하가 유방의 의심을 사는 상황에서도 챙겨주는 이가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면 소하가 상당히 인망이 두터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방은 [[시황제|진시황]]과 [[이사(전국시대)|이사]]의 경우를 거론한다. 허물은 신하가 취하고, 업적은 군주에게 양보하는 것이 신하의 미덕이라 들었는데, 소하는 뇌물을 받으면서 황제의 재산을 이용해 업적을 취하려 하였으므로 가두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왕위위는 즉각 반박했다. >폐하가 항우, 영포, 진희와 싸울 때도 관중을 굳게 지킨 것이 승상이었습니다. 그때 승상이 한 발짝만 움직였어도 폐하를 무너뜨리고 천하대업을 이루었을텐데, 이제 와서 뇌물과 업적을 탐내며 일을 꾸민단 말입니까? 그리고 진시황과 이사의 경우를 말씀하셨으나, '''그렇게 군주에게만 공이 돌아가는 탓에 진시황이 허물을 마다하고 싫은 말에 귀를 닫아 결국 진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어찌하여 진시황과 이사를 본받겠다는 천박한 말을 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유방은 뉘우치는 바가 생기고 마음이 편치 않아 소하를 곧바로 석방했다. 감옥에서 나온 소하는 맨발로 유방을 찾아와 사죄하였고, 그 모습을 본 유방은 '''"나는 너가 평소에 말한 것처럼 진짜로 걸주(桀紂) 같은 폭군이었다."'''라고 하면서 소하에게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죄하였다. 해석에 따라서는 '너는 끝까지 착하기만한 신하고 괴롭힌 나만 폭군이 됐네?' 하며 뒤끝을 부리는 모습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쨌든 이 시점부터는 더이상 의심하지 않았고 소하의 진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사실 이때 유방은 영포와의 싸움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후였다. 소하에 대한 갑작스러운 공격적인 태도는 자신이 죽고 난 후에 명성이 어마어마한 소하가 헛된 짓을 꾸밀 경우에 대한 불안감이 이유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왕위위가 유방에게 말했듯이, 소하가 정말 반역을 할 생각이었다면 그전에 더 좋은 기회가 많았기에 이를 이유로 유방이 잘못된 감정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참고로 이는 한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신은 워낙 의심살짓을 많이 한데다 처세술에는 영 빵점 이였기 때문인지 이런식으로 그를 변호해주는 사람이 없던 모양. 유방은 곧 숨을 거두었고, 이후 혜제가 즉위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