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하 (문단 편집) == 여담 == * 혜제 2년 소하가 세상을 떠나자 적자 소록이 차후의 작위를 세습했다. 그러나 나중에 후손이 끊어지자 [[서자]]의 후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차후를 세습한 후손이 죄를 지어 작위를 박탈당하고 5번이나 후사가 끊겼지만 한나라 조정은 그때마다 소하의 후손을 찾아서 후로 봉하여 작위를 잇게 했다. 이러던 중 봉국이 패군의 차(酇) 땅에서 남양군의 찬(酇) 땅으로 바뀌어, 작위명도 차후에서 찬후로 바뀌었다. 서한 내내 이어진 찬후의 작위는 [[왕망]]이 집권하면서 소향후(蕭鄕侯)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폐지되었는데, 동한이 들어선 후 장제가 소하의 후손인 소웅을 찾아 다시금 찬후에 봉하니 이는 유방의 공신들 중에서도 그 사례를 찾기 어려운 두터운 은전이었다. 당장 서한 시대에 왕으로 봉해진 유씨들도 동한 수립에 공이 없으면 예외없이 직위와 영토를 안 돌려주고 서인 취급했는데, 유씨가 아닌 소씨를 일부러 찾아냈다는 것부터가 대단한 특혜다. * 소하의 24대손이라고 자처한 태조 고황제 [[소도성]]은 [[위진남북조시대]]의 남조인 [[제(육조)|남제]]를 건국했다. 또 고제 소도성의 족제 [[소순지]]의 아들로 친척 조카이자 [[양(육조)|소량]]를 건국한 고조 무황제 [[무제(양)|소연]]은 소하의 25대손을 칭했다. 즉, 소도성과 소연은 [[항렬]]상으로 삼촌과 조카 관계였기 때문이다. 헌데 정작 이렇게 소하의 후손을 자처한 고제 소도성은 한고조 유방과 같은 유씨 일족[* 전한 고조 유방의 직계 자손은 아니고, 유방의 동생이었던 초원왕 유교의 21대손이 바로 유송을 건국한 고조 무황제 [[무제(유송)|유유]]였다.]의 국가였던 [[송(남조)|유송]]을 멸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유송 황실을 도륙했다(...) * 워낙 유능하고 좋은 신하로 유명하다보니 훗날 [[거란]]([[요나라]])제국의 시조였던 [[태조(요)|야율아보기]]는 한고조 유방의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황실의 성인 야율씨를 중국식 성인 '유씨'로 개성하면서 다른 부족의 성을 죄다 '소씨'로 바꿨다. 이 뜬금없는 개소리와 희한한 짓거리에 황실과 신하들은 당연히 크게 반발했고, 이에 야율아보기는 황제의 성을 야율씨로 환원했지만 소씨는 끝까지 남겼는데 그 이유가 '''"난 유방은 아니지만 소하를 거느리고 싶다!"'''라는 이유였다. 그래서 거란 8부족 중 황실 친족인 3부족은 야율씨를 썼고, 나머지 5부족은 죄다 소씨가 되어 버렸다. 거란의 인물들([[고려]]에도 쳐들어온 [[소배압]], [[소손녕]] 등)이 야율씨 아니면 소씨를 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하는 죽은 후 1,000년이나 지나서 졸지에 수많은 거란족 후손을 입양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