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무 (문단 편집) == 상세 == 손무가 오자서의 추천을 받아 오왕 합려에게 13편의 병법서를 보인 것은 이 무렵의 일로, 이에 대한 일화는 사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일화에 따르면 손무의 병법 13편을 읽은 합려는 손무를 오나라에 초대하여 그의 역량을 시험해보기 위해 부녀자로 조직한 군대를 지휘해볼 것을 제안하고, 손무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180명의 궁녀를 조련하도록 명을 받든다. 손무는 이를 두 편으로 나누어 합려가 가장 총애하는 궁녀 2명을 각각 부대장에 세운 뒤에 미리 간단한 훈련의 방식[*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와 같은 명령을 하면 시선을 각각 가슴, 등뒤, 왼손, 오른손으로 처리하라는 방식이다.]과 규정을 공지한 직후, 부월을 걸고 북을 쳐서 각 제대가 오른쪽으로 행진하도록 명을 내렸으나 궁녀들은 이를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큰 소리로 웃기만 하며 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손무는 군령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며 다시금 명령체계와 신호를 여러 차례 확실히 한 뒤, 또 한 번 북을 쳐서 왼쪽으로 행진하도록 했으나 궁녀들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웃기만 하고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손무는 '''"군령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인 자신의 책임이다. 하지만 군령이 이미 정확해짐에도 군법에 따르지 않는 것은 사졸들의 죄이다."''' 라고 공표하며 부대장 둘을 처형할 것을 명령한다. 누대에서 이를 지켜보던 합려가 몹시 놀라서 사람을 보내 "과인은 이미 그대가 용병술이 뛰어난 것을 알았소, 과인은 저 두 궁녀가 없으면 밥을 먹어도 단 맛을 느끼지 못하니 부디 명을 거두시오"라고 전하였다 이때 손무는 '''"저는 이미 왕명을 받들어 장수가 되어 있습니다. 장수가 군에 있을 때는 왕명이라도 받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라고 회신한 뒤, 끝내 두 궁녀의 목을 베어 군문에 두루 돌려보였다[* 래리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에도 이 장면이 나온다. 합려가 "제일 아끼는 애들이었는데..."라며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백미.]. 그리고는 그들 다음으로 합려의 총애를 받는 두 궁녀를 새로운 대장으로 삼고 다시 명을 내리자, 궁녀들은 모두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시키는 영을 수행하며 아무런 불평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에 손무는 군대가 준비되었다며 합려에 보고하지만 합려는 손무를 보고 싶지 않다면서 그를 피한다. 이에 손무는 '''"왕께서는 병서의 글자만 좋아할 뿐, 병서의 내용을 활용하지 못하십니다."''' 라며 합려를 꼬집었고, 이에 합려는 손무의 뛰어남을 깨달아 손무를 등용하였다고 한다.||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에 대해, 국방TV에서 역사학자 [[임용한]]이 군사적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다. 당시 춘추전국시대의 군대는 서양의 봉건제도처럼 사병형태에 가까웠고, 손무의 일화는 국가가 이에 의존하는 대신에 직접 백성들을 모집해 병력을 꾸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손무가 합려의 단점을 꼬집은 부분에서, 합려가 손무의 제안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고 임용한은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이 일화 후 손무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매우 적은데 사기의 손자열전에서는 이 일화와 함께 오나라가 당대의 최강국 초나라를 쳐부수고 제후들을 아우르는 데 손무의 공이 컸다고만 간단히 표현되며, 오자서의 열전에는 오자서와 함께 초나라 때문에 원한을 품고 있는 당과 채 두 나라를 끌여들여 초를 공격하자는 계책을 간언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 이외의 행적은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초나라의 수도 영을 공격할 당시 손무가 영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공을 가한다는 계책을 내고 작전을 지휘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사료가 아닌 소설 [[열국지]]에서 나온 내용이다. [[손자병법]]과 전해지는 일화를 토대로 추정해 보면, 손무는 훈련, 인사, 보급, 대전략 수립, 외교 등 후방지원에 능한 [[장군참모]]형 인사였을 것이고, 실제로 야전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은 [[오자서]]와 부개([[합려]]의 동생)를 비롯한 다른 장군들에게 맡겼을 것이다. 이런 인물 중 유명한 사람으로 [[조지 C. 마셜]]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내내 미 육군참모총장으로 일선 사령관으로 나간 적은 전무하지만 후방지원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때문에 손무의 말년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해 이에 대해서 손무의 이름이 초나라 전투 이후에 언급되지 않는 것을 근거로, 오왕 합려의 동생 부개가 오왕을 자처하여 오나라 내에서 내분이 일어났을 때 오군이 초에서 철수하던 도중 초군의 정규군의 반격을 받는 과정에서 손무가 전사, 혹은 내분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은거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또 한편으로는 오왕 합려의 뒤를 이은 부차가 월을 이기고 자만에 빠져 향락을 일삼자,[* 이두호의 만화에서는 합려가 향락을 일삼는 것으로 그린다] 이에 실망한 손무는 오를 떠나 은거하였으리라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상당히 많은 중국 드라마에서 바로 이 설을 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케이블 채널 CHING에서 방송하는 손자병법(원래 명칭은 병성(兵聖)). 고우영 열국지에서는 초나라 전투 직후 손무가 전란으로 가득한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은거한 것으로 설정하였다. 손무가 손자병법에서 민심의 중요성을 그렇게 설파했는데 정작 오초전쟁에서는 복수귀 오자서가 미쳐날뛰는 걸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보니 회의감을 느꼈다고 본다면 충분히 말이 된다. 이와 같이 손무의 행적에 밝혀진 부분이 너무나 적어 과거 손무와 [[손빈]], 그리고 두 개의 [[손자병법]]의 존재가 명확해지기 전에는 일부에게 실존하지 않는 환상의 인물이라 평가받은 적이 있었으나, 손빈병법이 확인됨으로써 현재 이 논란은 종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