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무현 (문단 편집) === 1990년대: 전성기 === 이후 1990년 [[김완선 5집]]의 프로듀서와 작곡[* 1989년 김완선을 매니징하던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의 제의로 앨범 준비를 시작했다. 한백희는 손무현에게 막연한 호의를 베풀었다고 한다. CD 보너스 트랙 제외 9곡 전곡 작곡. [[폴라 압둘]], [[바비 브라운]] 등 [[뉴잭스윙]]의 영향을 받았다.]을 맡아 메가톤급 히트를 이끌어냈다. 처음으로 작곡한 곡이 무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다.[* 마돈나, 재닛 잭슨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한다. 5분만에 작곡했다는 전설이 [[https://m.blog.naver.com/icewater7070/222118030577|있다.]] 이태리의 여가수 재키 무어가 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 저작권료가 상당해서 아직도 생활비 정도는 꼬박꼬박 들어온다고 한다.] 이외에도 <가장무도회>, <나만의 것>도 모두 손무현의 작곡이다. 무시무시하게도 이것이 손무현의 첫 작곡 결과물이었다. 김완선 6집에도 함께했다. 이로 인해 스타 작곡가로 발돋움해 여러 히트곡을 만들어내어 가수들에게 제공했다. 다른 가수에게 준 곡 중에는 1991년 이승철 3집의 '''추억이 같은 이별'''이 유명하다.[* 김완선과 엮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철저히 음악적 관계였다고 하며, 가요계의 비구니와 수도승으로 불렸다고 한다. 당시는 김완선이 이모에 의해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다시피 할 때다. 손무현도 이후 25세 경에 일찍 결혼했다.] 그런가 하면 한백희의 제안으로 1991년 솔로 가수로서 1집을 내놓아 어느 정도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음반 제목이자 타이틀곡은 '제목없는 시(詩)'로 음반 작업을 통해 인연이 닿은 [[김완선]]과 함께 무대에 올라 부르기도 했다. <시행착오>라는 록 스타일의 경음악도 좋아하는 팬들을 많이 모았다. 자신의 음악 세계를 한 번 정리하고자 하는 목표였다고 한다. 1993년에는 솔로 1집의 컬트적인 성공에 힘입어 솔로 2집 N.E.W.S를 발매했다. 여기서 타이틀곡인 ‘바다로 간 너는’ [* 뮤직비디오로는 '처음부터 사랑한 나'가 존재한다.]이라는 곡이 인기를 끌었다. 경음악인 N.E.W.S 또한 당시 한국 가요에서 흔치 않은 [[AOR]] 장르의 화려한 음악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2집 활동 중 [[토토즐]]에 [[윤상]] 및 당시 신인이었던 [[E.O.S]]와 출연한 영상이 [[https://www.youtube.com/watch?v=okH9Lt97y5Q|남아있다.]] 한편 손무현은 [[OST]] 작곡가로서도 여러 활동을 했는데, [[우리들의 천국]] OST를 맡아선 2기에서 쓰인 주제가인 <아껴둔 사랑을 위해>와 <나의 너에게>를 히트시켰고, 영화 쪽으로는 히트작 [[주유소 습격사건]]의 OST를 직접 [[작곡]]하기도 했다. 이처럼 [[작곡가]]로 활동하는 한편 [[세션]] 연주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확실한 실력 덕에 세션 기타리스트로서 손꼽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에서 기타를 맡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1994년 여름 콘서트를 시작으로 1995년 더블 트러블 앨범을 내며 밴드 활동도 겸하였다. 더블 트러블에는 [[플라워(밴드)|플라워]]의 김우디, 작곡가 [[황세준]], 드러머 장혁 등 실력파 연주자들이 있었다. 타이틀곡 '어린 날의 기억'은 훗날 손무현 자신이 프로듀싱했던 [[외과의사 봉달희]] 사운드트랙으로 리메이크되었다. 음반 목록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