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손학규계 (문단 편집) == 상세 == 손학규 계파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 손학규의 민주화 운동 이력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당시 손학규는 김근태, 조영래등과 함께 경기고-서울대 KS민주화 3인방으로 이름을 올렸었다. 그러나 민주당행을 택한 김근태나, 재야로 남은 조영래와는 다르게 손학규는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으로 입당했고, 이후 당의 이름이 [[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바뀌는 동안, 3선 국회의원, 최연소 장관, [[경기도지사]] 등을 거치며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되었으나 당시 한나라당의 최대 계파인, MB계와의 싸움에서 밀리고 이명박이 대놓고 '손학규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라고 발언하자. [[한나라당]]에서 탈당하면서, 김근태의 권유로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하게 된다. [[https://www.nocutnews.co.kr/news/311469|대통합 밀알 김근태, 친구 손학규 대통합호에 합류시켜]] 이때 같이 탈당한 인사들과[* 조정식, 이찬열 의원이 대표적이다.] [[민주당계 정당|민주당계]]의 인물 일부를 흡수하여 손학규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같은 경기고 출신인 이종걸이 있다. 이종걸은 이후 손학규 탈당 회동에도 참석했고, 대표적인 반문 박영선과 함께 민주당 탈당후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행이 유력했지만 결국 탈당하지 않고, 이찬열만 탈당한다.]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3826|손학규계와 손학규]] 한때 민주당계 정당에서도 대권주자로 거론이 되었지만, 아무리 민주화 운동 인사 출신이라고 해도 민주화 운동 최대 계파인 민평련의 수장으로는 김근태 등이 있었고[* 다만 우상호를 비롯한 민평련 계파와는 우호 관계 였다.], 결국 조직 싸움에서 밀려 호남계를 대표하는 정동영에 이어 2위로 밀려나 대선주자가 되지 못한다. 이후 손학규계는 비주류 계파로 당내에서 친노-호남계-민평련 등에 밀리고 계파 수장인 손학규 역시 험지로 내몰리는 등[* 경기도의 강남으로 불리는 분당과 당시 [[남평우|남씨]] [[남경필|부자]]가 수십년 동안 세습하고 있는 수원 등으로 공천을 받았다.] 묘하게 대우가 좋지 않았다. 이후 손학규 계파는 원내대표 선거 등에서 줄줄히 낙방하면서 비주류로 밀려난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428004007|손학규계·486·호남 일부 결집… ‘비주류 반란’ 성공할까]] 그리고 이후 당이 위급할 때 구원 투수 역할을 하면서 복귀하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이때 얻은 별명이 만덕산이다.] 더불어민주당 시절에는 손학규계가 사실상 와해되고, 손학규가 탈당 후 국민의당으로 가면서 따라간 인물은 이찬열 의원 1명에 지나지 않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과거 손학규계 였던 인물들은 지금은 대부분 이재명계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손학규계 인사들이 바로 이낙연 국무총리, 조정식 의원과, 양승조, 전혜숙, 정춘숙, 오제세, 강창일, 김병욱, 고용진, 강훈식, 이종걸, 박찬대, 임종성, 정성호, 이찬열 등이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61020.99002194519|손학규 일부 측근 민주당 탈당 움직임...당내 손학규계 꼽아보니]] [[https://m.etnews.com/20211203000158|이재명 선대위 핵심으로 떠오른 '손학규의 남자들'…강훈식·김영진·김병욱 등]] [[https://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927316|손학규계와 이재명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