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솔로몬 (문단 편집) == 성군이자 명군으로서의 모습 == 솔로몬의 통치하에 통일 [[이스라엘]]은 최대 번영기를 구가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는 하도 [[은]]이 많아 마치 돌 같이 여기며 귀하게 보지도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조공으로 받는 금만 해도 매해 666 달란트(39,960 파운드 = 약 18,000 kg)였다고. 금 666달란트 정도면 지금 기준으로 약 '''"1.3조 원"에 해당한다.''' 또한 시대마저 잘 만났는지, 당대 중동의 맹주 위치에 있던 이집트 제 21왕조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며 솔로몬 통치하의 이스라엘은 보다 더 자신들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이집트 왕조로선 비교적 드물게도 파라오의 딸이 솔로몬에게 시집온 것과 그 외 중동의 여러 중소규모 왕국과 세력에서 그에게 딸을 바쳐, 소위 말하는 300명의 아내와 700명의 처첩을 가지게 된 것을 들 수 있을 듯. 당시 이집트 왕조는 근친혼으로 유명한 왕조였고, 때문에 다른 나라에 왕족을 보내는 일을 좋지 않게 보았는데도 이게 가능했다는 것이 놀랍다.] 성전 건축을 할 당시에는 [[페니키아]]([[레바논]]에 있던 고대 국가)의 중심이었던 [[티레]]에서 히람 왕이 보낸 기술자가 와서 도왔는데, 목재로 쓸 엄청난 양의 [[백향목]][* 지금도 레바논은 백향목 명산지다.]들을 벌목하여 여러 개의 뗏목으로 엮어 공수했다고 한다. 티레는 히람 시절 때 번영했는데, 솔로몬은 그와 결혼동맹을 맺고 서로 같이 무역을 하기도 하는 등 경제적 교류가 활발했다고 한다. 또한 성경의 묘사에 따르면 성전 이외에도 호화로운 궁을 건축하였으며, 전성기 이스라엘의 넓은 강역을 여러 개의 지역으로 구분하고 총독을 보내어 통치했다고 한다.[* 성경의 묘사에는 전성기의 이스라엘 강역이 시나이 반도부터 요르단 강 동편, 페니키아, 그리고 키프로스 섬과 시리아, 먼 유프라테스 강 유역까지라고 나와있으나, 이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 성경에서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의 최대 영토 확장의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은 선왕 다윗인데, 이 당시에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딥사, 가나안 남쪽 부근의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펼쳐졌던 이스라엘 바깥쪽의 세력도는 완전한 정복이 아니라 조공을 받는 것을 조건으로 화친을 맺은 '''이스라엘의 제후국'''의 개념에 더 가까웠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홍해로 통하는 에시온게벨 등 여러 곳에 항구를 지어 무역을 활성화했으며,[* 지중해-근동을 넘어 [[인도]]와도 교역을 했다는 말도 있다.] 동시에 국방에도 신경을 써 전략적 위치에 있는 므깃도 등지에 병거를 정비하고 성을 세워 일종의 요새 도시, 혹은 성새 도시로 만들었다.[* 참고로 이 므깃도(Meggido)라는 도시는 그 유명한 아마겟돈이라는 말의 원형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하르마겟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