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해 (문단 편집) === 사망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송해 영정 고화질.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fff 공식 영정}}}'''[* 패용한 훈장은 2001년 수여받은 [[화관문화훈장]]과 생전 두 차례 수여받은 대통령 표창이다.]}}} || [[2022년]] [[6월 8일]], 인근에 살던 딸이 아침식사를 하러 올 시간이 지나도 송해가 오지 않자, 자택으로 찾아갔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송해를 발견해 [[119]]에 신고하였다. [[https://naver.me/F7xL0F7T|#]] 오전 8시 19분 쯤 소방당국이 송해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이미 송해는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시신은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졌다.[* 뉴스에서는 사망 1시간 뒤부터 속보로 보도됐다.] 사실 송해의 건강 상태는 연초부터 좋지 않았다. 3월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입원했고, 퇴원 뒤에도 건강이 나빠 5월에도 다시 한번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다. 5월 23일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 수여식 당시 인터뷰를 가졌는데, 살이 많이 빠지고 수척해진 모습이 나왔다.[* 결국 이것이 그의 생전 마지막 공식석상이 되었다.] 사망 4일 전인 6월 4일부터 전국노래자랑의 야외 녹화가 2년만에 재개됐는데, 장거리 이동 등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녹화했다.] 불참했을 정도로 이미 건강 상태가 상당히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5월 입원 당시 언론에는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언론 보도와는 달리 건강이 이미 많이 상해있었던 것. 팬데믹 이전까지 전국을 누비며 왕성히 활동하다 갑작스레 장기적 활동 중단에 이르다보니 건강이 점차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야외 녹화 중단 이후로 체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바쁘게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면 되려 건강이 안좋아지는 케이스. 송해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위드 코로나 선언 후 방역수칙 준수 아래 야외 녹화에 돌입했어야 그를 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일각의 아쉬움도 있다.) 접입가경으로 코로나 19 감염이 건강을 크게 상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코미디언 [[엄영수]]는 팬데믹만 아니었어도 훨씬 오래 노래자랑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빈소는 [[https://funeral.snuh.org/main.do|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장례 형식은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장으로 3일간 치렀다. 원래 5일장으로 예정되었으나, 유족의 뜻에 따라 3일장으로 축소되었다. 유족들은 원래 가족장을 희망했다고 하나, 합의 하에 협회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위원장은 코미디언협회장 엄영수가 맡았으며, 코미디언 석현, [[김학래]], [[이용식]], [[최양락]], [[유재석]], [[강호동]], [[이수근]], [[김구라]] 그리고 코미디언이자 지상파 3사 코미디실장을 맡은 [[김성규]]^^(KBS)^^, [[고명환]]^^(MBC)^^, [[정삼식]]^^(SBS)^^이 장례위원을 맡았다. [[조세호]], [[유동근]], [[이순재]], [[이미자]], [[임성훈(방송인)|임성훈]], [[김흥국]], [[전현무]], [[김숙]], [[임백천]], [[장민호]], [[장윤정]], [[양상국]], [[쟈니 리]], [[심형래]], [[송가인]], [[정동원]], [[이상벽]] 등 다수 후배 코미디언, 가수, 배우들과 [[김동연]], [[황교안]], [[주호영]] 등의 정계 인사들이 조문했으며, [[나훈아]], [[이준석]], KBS 예능센터장 조현아 등의 인물들이 조화를 보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많은 동료 연예인들은 물론 네티즌들도 하나같이 큰 충격이라는 반응과 함께 그를 추모했다. 오랫동안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오며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쌓았고, 무엇보다 '''현역 최고령 연예인'''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 때문에 시청자들의 충격이 큰 편이다. 정치권에서도 그의 죽음에 여야를 불문하고 애도를 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조화를 보냄과 함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문체부장관]] [[박보균]]을 통해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4709195?sid=102|#]] 생전에 그는 죽을 때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마지막 방송이 사망 1달 전인 5월 15일 충남 당진시 편이기에 송해는 사망 24일 전까지 녹화를 진행했다. 전국노래자랑이 코로나 사태 이후 정상적인 방송 진행을 거의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송해는 자신이 시청자들에게 했던 약속을 끝내 지키고 떠났다. 해외 특집은 물론 [[금강산]]과 [[평양]]에서도 노래자랑을 진행했지만, 자신의 고향 [[황해도]] [[재령군]]에서의 녹화는 끝내 하지 못했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와 [[AP통신]], [[일본]]의 [[NHK]] 등 여러 외신들도 송해의 사망을 보도하며 추모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youtube(PSWeLpFBkG4)]}}}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fff 송해의 영결식 현장}}}'''}}} || 영결식은 코미디언 협회장으로 엄숙하게 진행됐다. 엄용수는 추도사에서 이제 천국에서 노래자랑을 진행하라며 울먹였고, 헌화와 분향에 참여한 유족들과 후배들 역시 통한스러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그의 상징인 전국노래자랑 오프닝 멘트가 나오자 참석자들이 단체로 "노래자랑!"을 외치는 장면은 송해의 커리어를 말해주기 충분했다. 운구는 유재석, 강호동, 최양락, [[임하룡]], 양상국이 맡았고 영결식 뒤 송해의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 낙원동의 [[https://place.map.kakao.com/9932158|상록회]]와 송해길을 들렀다.[* 송해가 사망 전날까지도 들린 곳이다.] KBS 본관 앞에서 노제를 치뤘는데, [[한국방송공사]]장 [[김의철]]이 참석했으며 KBS 측에서는 본관 건물에 그를 추모하는 대형 현수막을 걸었다. 전국노래자랑 악단이 느린 버전으로 편곡한 오프닝 음악과 [[올드 랭 사인]][* '석별의 정'으로 알려진 그 노래 맞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애국가 멜로디로 쓰인 곡이기도 하다.]이 조곡으로 연주되었다. 피날레 곡으로 송해의 [[나팔꽃 인생]]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되었다. 시신은 [[김천시공설화장장|김천시 화장장]]에서 [[화장(장례)|화장]]했고, 생전에 "석 여사(아내)의 묘지 곁에 영면하겠다는[* 송해는 아내의 장례식 당시 고인이 된 아내의 무덤 옆에 따로 [[가묘]]를 한 개 더 만들었는데, 그것이 송해 본인의 묏자리라고 한다.] 송해의 뜻을 따라 아내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기세리에 안장되었다. 송해의 사망으로 현역 최고령 연예인은 1934년생인 [[이순재]]가 되었다.[* 생전 두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친분이 있었다. 이순재 역시 송해에 대해 여려차례 덕담이 담긴 언급을 한 바 있다.] 또한 초대 MC 이한필(위키 리) 이어 [[전국노래자랑]] 역대 MC들 중 두 번째로 세상을 떠났다. 3대 MC [[https://blog.naver.com/lyhlsrn/222800117200|고광수]]는 송해가 세상을 떠난 지 약 1개월만인 7월 4일에 사망하였다. '''송해가 세상을 떠나면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1세대 코미디언들은 전부 별이 되었고[* 송해는 1세대 코미디언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2020년대까지 꾸준히 활동한 인물이다. 1세대 코미디언들은 1990년대 말 [[개그콘서트]]의 런칭과 함께 점차 현역에서 물러났고, 2000년대 초중반까지 [[폭소클럽]]과 [[쇼 행운열차]] 등에 종종 출연하다 완전히 방송을 떠났다.], 악극단과 극장에서 시작해 우리네 안방극장을 울리고 웃긴 그들은 대한민국 연예계의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