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송해 (문단 편집) ==== [[6.25 전쟁|6·25전쟁]]과 [[월남]] ==== 하지만 학업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6·25전쟁]]이 발발하자 초기에는 고향(재령)에 머물렀는데, 이 당시 [[구월산]] 일대에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 대한민국 국군의 북진 후에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2~3천여명 규모의 패잔병의 약탈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1950년 12월 북괴군과 중공군이 남하하던 때 다시 나가려는데, 당시 어머니에게 "얘야, 이번엔 조심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걱정 마세요."라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는데, 그것이 생전의 마지막 인사였다. 조선일보의 6·25 관련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저 대화를 하고 어머니가 준 가래떡이 마지막으로 집에서 먹은 밥이라고 한다. 또한 [[조선인민군|북괴군]]과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의 진주와 포격을 피해 재령에서 남쪽 항구인 해주항으로 피난을 갔다 보름 정도 걸린 이 길에서 북괴군의 포격과 기관총 세례를 피하다 철교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51年_송해.pn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fff 1951년, 24세 시절의 송해}}}'''[* 사진 속 기관총이 [[나치 독일]]의 [[MG34]]인데 아마 [[소련]]이 [[독소전쟁]] 당시 노획한 장비를 [[중국]] [[인민지원군]](통칭 중공군)이나 북괴군에게 공여했다가 다시 국군이나 UN군에게 노획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 땅이 되어 버린 [[해주시|해주]]에서 건너편의 섬 [[연평도]]로 은밀히 나룻배를 타고 도착한 뒤, 연평도에서 LST선에 타면서 부산까지 내려왔다. 이때 실향민으로 배 위에서 “바다야 내 갈 길 어디냐”는 생각에 지금의 이름, 즉, '''바다 해([[海]]) 자를 예명이자 [[아호]]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훗날 주민등록 체계가 확립되고 나서 그의 본명이 된다. 피난선을 타고 도착한 [[부산항]]에서 그는 앞 사람만 따라다니다 군에 입대해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하였다.[* [[https://news.v.daum.net/v/20170727113807196|[황규인의 잡학사전] 6.25 전쟁 휴전 소식 처음 알린 건 '송해']] 송해 본인의 생전 언급으로는 고향에 돌아갈 길을 끊는 메시지를 그가 직접 타전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말년에도 또렷이 기억해내었다.[* 송해가 말년에 예능에 출연했을 때가 [[기아 K5]]의 초창기 광고가 나오던 대였는데, 당시 광고에 삽입된 "돈 쓰돈 쓰쓰쓰쓰쓰" 시그널을 그대로 K5라고 복호해 주는 장면이 나왔다. 다만 송해가 휴전 소식을 "처음 알렸다"는 물증은 없으며 송해 본인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 뿐이다. 정황을 보면 실제로 제일 처음 알렸거나, 그 일대에서 처음 알린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전투 중지 명령은 정전 협정 발효를 기해 동시다발적으로 내려졌으므로 소식을 처음 알렸다는 말 자체가 애매한 면도 있다.] 그리고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인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해 줬는데, 그녀가 바로 그의 부인 석옥이다.[* 본인이 혈혈단신이었던 터라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채 지내다 63년 만인 2015년 [[나를 돌아봐(예능)|나를 돌아봐]] 출연 당시 처음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데뷔 이전의 내용이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송해 역시 6·25 전쟁 참전용사라 [[국가유공자]]이며, 그의 사후 장례식장에 국가유공자증이 영정과 함께 진열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