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성유원지 (문단 편집) == 연혁 == 근대식 수성못이 생기기 전 이 일대 농민들은 [[신천(대구)|신천]]으로부터 농업용수를 가져다 썼으나, 이 신천이 상수도로 사용되면서 농업용수가 부족해졌다. 그러자 1915년 [[대구광역시|대구]]에 정착해 수성들 일대에서 화훼농장을 하던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水崎林太郞)가 조선인 4명과 함께 수성수리조합(壽城水利組合)을 발기하고, 수성못을 축조하는 데 참여했다. 이후 [[저수지]] 축조사업은 1924년 5월 26일 인가를 받아 동년 9월 27일 착공, 이듬해인 [[1925년]][* [[1927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1302100002370|설]]도 있다.] [[4월 24일]] 둘레 2㎞, 면적 108만 5천㎡([[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1302100002370|6만 6천평]]), 저장수량 70만톤의 규모로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658|완공]]되었다. 현지 농민이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저수지 설계와, 측량을 끝낸 후 경상북도지사에게 직언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조선인을 배려하지 않은 것은 일본인의 잘못”이라고 하며 조선 총독과 직접 면담하고 공비 1만2천 엔을 지원 받아서 수성못을 조성하고 관리했다. 수성못 축조후 미즈사키 린타로는 수성못 근처에 움막을 짓고 가족과도 떨어져 살면서 오로지 수성못 관리만 하다가 유언으로 '내가 죽으면 묘지는 조선식으로 만들고 수성못이 잘 내려다 보이는데다 묻어다오' 라고 말해서 수성못 근처에 묻혔다. 매년 [[4월 2일]]이 기일이며 지금도 추도, 추모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1940년대에는 대구 부공원으로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658|지정]]되었다. 1960년에는 관광[[호텔]]인 수성호텔이 개업했다. 여담으로 당시엔 [[맞선]] 보는 장소로 유명했는데, 1980년대에는 수성호텔 다이아몬드홀이 대학생들의 학과페스티벌 장소로도 인기를 끌었다. 1965년 건설부 고시로 수성못 주변 일대를 유원지로 결정, 1969년 유원지 구역을 확장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658|고시]]했다. [[http://www.yeongnam.co.kr/Photo/2007/02/09/M20070209.010331509380001i2.jpg|이미지]] 1975년부터 [[포장마차]]가 하나 둘씩 생기더니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성못 둘레에는 100여개의 포장마차로 이뤄진 포장마차촌이 밤마다 불야성을 이뤘다. 1982년 9월 22일 [[대구광역시|대구직할시]] 고시 제108호에 따라 유수지역, 운동지역, 휴양지역, 특수지역, 편입 및 관리지역 지구로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658|확정]]하여 본격적인 공원으로 개발되었다. 이듬해인 1983년 [[동대구로]]와 연결되는 유원지 진입로 확장공사가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017602|시작]]되었다. 상가와 주변 불량 건물을 정비해 유원지의 모습을 새롭게 하면서부터 도시 근린 유원지로 본격 개발됐다. 1986년 6월 우수와 오수 분리시설을 설치에 이어 같은해 12월 수성못 바닥 준설(浚渫)공사를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658|실시]]했다. 1990년부터 범죄와의 전쟁에 따른 유흥업소 심야영업 규제로 인해 취객들이 [[포장마차]]로 가서 크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1302100002370|성업]]했다가 1991년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철거가 지지부진했다가 1998년 심야영업규제 폐지로 포장마차가 경쟁력을 잃어서 2000년 말 일제히 철거되었다. 이후 데크를 설치하고 조경을 다듬는 등 수성못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재정비된 수성못 근처에 [[식당]]과 [[카페]] 등이 많이 들어서면서 유동인구를 끌어들이게 되었다. 2007년 10월 16일 당시 전국 최대의 영상음악분수시설이 준공돼 5월에서 10월까지 매일 두 차례씩 야간에 [[http://www.kb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290658|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2008년 ~ 2010년에는 이곳에서 수성폭염축제를 열었다. 2010년 ~ 2013년 말에 생태환경 조성 사업으로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81302100002370|새단장]] 하였다. 데크가 새로 생겼다. 이후 [[대구광역시|대구]] 시민들의 가족 [[나들이]] 코스, 산책 코스, 연인들의 주요 [[데이트]] 코스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