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정(보석) (문단 편집) === 한국 === * 대표적인 한국의 고대 목걸이 유물로 [[금령총 수정 목걸이]]가 있다. * [[고구려]]에서는 이 수정으로 [[성]]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으니 진위여부는 알 수 없지만, 3가지 이상의 사료에 기록되어 있어서 마냥 전설로만 치부하기엔 어렵다. 자세한 내용은 [[수정성]] 참조. * 안경에도 쓰였다. [[신라]] [[선덕여왕]]이 쓰던 화주([[돋보기]])인 [[분황사 모전석탑 출토 수정화주]]가 현존하고 있고, 국내 안경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임진왜란]]으로 유명해진 [[학봉 김성일]]이 남긴 안경이 있는데 이 안경이 수정 안경이다. 그리고 1600년대 초반부터는 안경의 국내 생산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경주 최씨 3대 명산물 중 하나인 남석 안경이 그것이다. 경주 남산에서 채굴해 온 돌을 썼다고 하여 남석(南石)이란 이름을 붙였고, 이것을 캐 해오면 전담 하인이 내내 갈아서 안경알로 만들고 거북이 등껍질로 안경테를 만들어 썼다[* 이 당시 쓰이던 안경테는 거북 등껍질 가운데 모양 좋은 것을 사용해서 만들던 대모안경테와 암소의 뿔을 가공해서 만드는 우각안경테가 존재한다. 당연히 안경테의 재료 수급이 어려운 대모안경테가 고급품 취급을 받았다.]. 다소 무거운 것이 단점이지만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며 김이 잘 서리지 않고 안구 질환에 걸리지 않는 것이 장점이었다고 하며 추사 [[김정희]] 선생께도 선물되었다고 전한다. 이 남석 안경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안경이었지만, 가공이 까다로운 데다가 일본에서 서양식 안경이 전해지면서 고물 취급을 받게 되어서 그 맥이 가늘게 유지되고 있었다. 남석 수정 안경알이 쓰이지 않게 된 비싼 가격[* 1980년대 가격이 최하 20만~100여 만 원]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이미 1980년대에 이전에 경주의 원광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전혀 남지 않은 것은 아니라지만, 오래 전에 채굴이 금지되었다. 이후 시중 안경점에 재고로 있던 원석마저 모두 소진되고, 1980년대 이후 합성한 플라스틱 재질의 안경알이 투명도나 무게나 굴절율에서 천연/합성 수정 렌즈에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며 유리 안경과 천연 수정(석영)안경은 더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