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숭경황태후(연희공략) (문단 편집) === 가흥 전씨에 관한 소동 === 이에 숙신은 태후를 쳐내려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태후가 임명한 내무부 총관 오서래를 먼저 쳐낸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심복인 원춘망을 그 자리에 심었다. 그리고 원춘망이 그 오서래를 죽이려고 할 때, 오서래가 보관 중인 [[건륭제(연희공략)|황제]]의 유모인 '''온숙 부인'''과 관련된 서신을 얻어냈다. 그 서신의 내용은 바로, '''사실 태후 뉴호록씨는 황제의 생모가 아니며 진짜 생모는 가흥 전씨'''라는 실로 무시무시한 진실이 담겨졌다. 한편, 숙신은 수강궁으로 온 [[애신각라 홍주|화친왕]]이 친모인 유태비의 궁으로 오게끔 유도하였고, 유태비의 유품 중, 그 서신을 찾아내게 하였다. 이를 발견한 화친왕은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태후에게 유린당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부적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는데... 아니, 이건 태후의 죽음을 재촉하는 부적이야!"'''라는 말을 하면서 이를 고스란히 황제에게 전달하였다. 숙신은 더불어 전말을 알고 있는 전씨의 형제인 예부시랑 전정원, 즉 황제의 친외숙을 마상 사고로 죽이고, 이를 태후가 진상을 가리려고 꾸민 짓으로 만들어 태후를 정말 끝까지 몰아붙였다.[* 숙신은 이때 태후와 [[위영락]]을 같이 쳐내려고 했다. 위영락이 황제의 총애를 잃었지만 마지막 남은 뒷배인 태후마저 영락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면 영락에게는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모두 사라지는 셈이 된다.] 결국 태후는 충격에 받고 중풍에 걸리게 되어 쓰러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숙신은 태의인 장원판을 협박하여[* 장원판은 아들이 젊은 날에 요절하고, 손자 하나만 있는데 그 손자를 이용하여 협박한 것이다. 그렇지만 태후는 자금성 짬밥을 허투로 먹은 게 아닌지 처방전을 보지도 않고 바로 장태의가 수상하다고 여겼다. 다만 엽천사의 말에 의하면 심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선 부작용도 쎈 강한 약을 써야하난데 태후는 너무 귀하신 몸이라 역으로 너무 쎈 약은 장태의가 아니라 다른 태의였어도 감히 쓸 용기가 없었을 거라고 평했다.] 현상 유지만을 위한 약 처방을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로써 태후와 영락은 정말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되었다. 허나 영락은 태후를 모시는 류상궁을 통해 한때 태의였지만 모종의 이유로 출궁하여 민간의 병자들을 돌보던 엽천사를 궁녀로 변장시키면서까지 불러들여 태후를 진료하게 하였다. 한편, 영락은 평소에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한 [[육만만|경귀인]]과 손을 잡고, 황제에게 기윤이라는 사람이 쓴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라는 기담에 관한 책을 보여주면서 태후가 미처 밝힐 수 없었던 얘기들을 해줬다. 가흥 전씨가 살아있었던 시점에서 산서에 큰 가뭄이 들어 전씨 부인이 황자 시절의 [[옹정제]]와 함께 미행에 나섰는데, 형제들과의 치열한 황위 다툼으로 수차례 위험한 함정에 빠졌고, 그 와중에 수행원과 흩어지면서 옹정제가 화살을 맞아 다쳤다고 한다. 당시 옹정제는 자기를 죽이려는 자객을 피하기 위해 깊은 산으로 들어가지만, 하필이면 태항산에 숨어있던 도적들을 만났다. 그래서 전씨 부인은 옹정제를 농가에 숨겨주고 자신이 옹정제가 입던 옷으로 갈아입어 홀로 쫓아오던 반군을 유인했다고 한다. 전씨 부인이 진짜 도적에게 붙잡혀서 강간을 당하였거나 아니면 정절을 위해 자진했거나 모두 옹정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일이 퍼지면 전씨 부인은 둘째 치더라도 그녀에게서 태어난 황제 또한 온갖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태후는 그런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걸 감수하고 진실을 숨기려고 한 거라며 경귀인이 말하였다. 그리하여 경귀인은 황제에게 이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면 옹정제의 곁을 보필한 측근 시위 왕천일[* 왕천일은 단순히 근위병 역할만 했던 게 아니라 [[건륭제(연희공략)|황제]]에게 기마술과 활쏘기를 가르쳐준 스승 격의 인물이다. 게다가 황제가 어린 시절에 말썽을 피우자 대신 벌을 받기도 했으니 황제로서는 그를 각별히 여기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을 부르라고 하였고, 황제는 그를 불러서 진상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전씨 부인은 [[옹정제|선황]]을 구하였지만 끝내 정절을 지키지 못했고, 이에 선황의 체면을 잃게해 자진하라는 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황제는 전씨 부인이 왕부로 돌아오기전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옹정제와 함께 왕부로 돌아왔다하니 태후가 끝까지 자신을 속였다며 크게 화를 냈었다. 하지만 [[옹정제|자기 아버지]]가 자신의 생모를 죽이게 만들었으니 멘탈이 터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황제는 다급하게 수강궁으로 달려와서 태후를 의심하고 불효를 저지른 것에 사과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태후는 [[위영락]]을 데리고 원명원으로 출궁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빠르게 말을 타고 그녀를 쫓아갔다. 그러다가 중간에 기다리고 있던 [[육만만|경귀인]]과 마주쳐서 그녀로부터 태후와 전씨 부인에 관한 말을 전해들었다. 옹정제는 평생 [[강희제|아버지]]를 음해하고 어머니[* [[효공인황후|덕비 오아씨]]를 말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옹정제는 친모인 오아씨와 매우 사이가 안 좋았다.]를 핍박하였으며 형제들을 죽인 악명을 감당하며 살아왔으니 황태자에겐 명분이 많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는 전씨 부인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 건 절대 아니지만, 건륭제가 온갖 음해를 받으며 창피를 당하게 둘 수는 없게 하기 위해 전씨 부인을 죽인 거라고 한다. 얼마 후, 태후가 옹정제의 명을 받아 독주를 들고 전씨 부인을 찾아갔는데 전씨 부인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태후께 세번의 절을 올리고 흔쾌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태후는 전씨 부인의 절을 받아준 것은 아주 무거우며 중요한 부탁을 받은 것이니 비록 자기가 직접 낳은 것은 아니지만 친어머니처럼 건륭제의 모든 일생을 보호해준 거라고 한다. '''그래서 황제는 다시 태후의 가마를 쫓아가면서 부디 회궁해달라며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하였지만, 태후는 그냥 쌩까고 원명원으로 가버렸다.''' 여기서 놀라운 진실이 숨겨져 있는데 '''사실 태후는 중풍에 걸린 적이 없었다. [[휘발나랍 숙신|나랍 황후]]의 경계심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황제의 미안한 마음을 자극하기 위해서 병에 걸린 척만 했던 것 뿐. ''' 게다가 태후는 자기 마음에 쏙 드는 영락이 화를 입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그녀와 함께 이 일을 꾸민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은 사실 태후의 미화였다.''' 전씨 부인이 죽어서 뉴호록씨가 건륭제를 양육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이 시절의 뉴호록씨는 방계 출신인 탓에 옹정제의 격격에 불과하였고, 왕부 내에서 직위가 낮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른 고귀한 가문 태생의 복진들을 제쳐두고 건륭제를 키운 것은 모종의 음모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 당장 자금성의 후궁들도 빈 계급이 되어야만 자기가 낳은 자식을 양육할 자격이 존재한다.] 그리고 태후는 영락에게 '''"그래서 전씨는 어떻게 됐냐고 묻고 싶은 거냐? 어떨 거 같으냐?"'''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전씨를 죽였다는 원인제공자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허나 어쨌든 영락은 태후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므로 더는 이 사실을 캐묻지 않고, 태후와 같이 3년 동안 원명원에 머물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