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파르타 (문단 편집) ====== 저항 ====== 그리스내 다른 폴리스들도 이러한 속주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스파르타 사회의 이러한 차별과 인간 사냥 등은 도를 넘을 대로 넘은 짓이었다. 이따위 짓을 당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지배를 당하던 메세니아인들도 치를 떨었고 수백 년 동안의 지배에도 끝끝내 굴종하지 않고 몇 번이나 스파르타에 항거했다.[* 그리스에서 여러 전쟁이 일어날 때도 아테네가 다른 도시들에게서 지원을 요청할 때 군사력 최강인 스파르타가 매번 지원을 못한 적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메세니아 사람들의 저항을 진압하는 데 군사들을 돌려야 해서였다. 스파르타가 왜 군사들이 뛰어난데도 정복 활동을 많이 못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며, 그만큼 정치 체계가 아테네보다 못했다는 소리다.] 기원전 650년경 제2차 메세니아 전쟁의 지도자로 알려진 전설적인 영웅 [[아리스토메네스]]가 한 예다. 하지만 가난한 노예의 도시국가가 도시의 삶 전체가 전쟁 준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실상 주민 전체가 전투 참여가 가능한 인간 병기들인 스파르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고[* 특히 메세니아인들의 무기 소지와 군사 훈련 자체가 금지였다. 게다가 메세니아인들은 절대 전쟁에 동원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중장갑으로 제대로 무장하고 전투 훈련에 이골이 난 스파르타군을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실전 경험도 부족하며 열악한 무기로 무장한 메세니아인들이 이길 리가 없었다. 여러모로 [[고트족]]과 비교하긴 하지만, 사실은 그 당시 고트족을 지배한 로마는 수탈만 했지 그들이 무기를 감추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이들을 볼모지 땅에 살도록 내버렸기에 그냥 넘어갔었다. 그러나 스파르타는 그들을 계속 경계해서 무기를 가질 수 없도록 철저하게 탄압했기에 메세니아인들이 무기를 들고 봉기할 때도 대부분이 농기구나 바위와 같은 걸로 싸워야 했다고 한다. 거기다 로마는 원래 타민족에게 어느 정도 자비로운 정도였지만, 하필이면 고트족을 담당하던 로마 귀족이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으로 찌든 인물인지라 이로 인해 고트족에게 강한 반발을 사서 그랬지, 로마는 타 국가에 비해서 이민족들이 로마에 충성하면 잘 대해주던 편이었다. 사실 로마의 정책은 의외로 현대 사회에서도 그럭저럭 납득이 갈 수준으로 관대한 케이스가 꽤 있다.] 그때마다 무참하게 진압당했다. 하지만 스파르타가 코린토스 전쟁에서 테베에 참패하자, 승리한 폴리스들은 스파르타의 국력을 깎아낼 목적으로 메세니아를 스파르타에서 떼어내서 독립시켰고, 마침내 독립한 메세니아는 타 폴리스 지원 아래 스파르타에 대한 모든 식량과 물자 운송을 중지했다.[* 그리고 메세니아는 스파르타의 침입에 대비해 국경선에 요새와 성을 쌓았고 스파르타는 다시 되찾으려고 맹공을 퍼붓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애당초 도시국가가 난립하고 분쟁이 생겼을 때 굳이 평지에서 회전을 치른 게 바꿔 말하면 이 시대 공성술이 수성술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얘기와 같다. 메세니아 측이 스파르타를 굶겨 죽이기 위한 방어선을 축조하는 데 성공한 순간 스파르타가 이를 타개하려면 평소 방식의 정면 돌파로는 어렵고 앞선 공성 기술을 도입하거나 방어선 외부의 강력한 동맹의 도움이 필요했겠지만 이미 그런 일을 해내기엔 스파르타의 국운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동안 메세니아 착취와 군사력에만 신경 쓴 스파르타는 메세니아가 독립하자 본토 농지들도 소수의 귀족들이 독점했고 농사나 기술 개발에 무관심한 결과, 식량 생산은 타 폴리스에 비해 형편 없었고 돈이 없다 보니까[* 철 막대기 화폐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군사력에 의존한다는 것들이 군사력도 제대로 유지 못 할 행정 체계와 정치 수준을 보이고 자체 생산력도 떨어지다 보니 국가에 대한 신용 가치가 있을 리 없고 그것이 화폐 가치도 떨어뜨린 것이다. 스파르타가 제대로 된 국가였다면 철 막대기 화폐라도 가치를 인정받았을 것이다.] 무역을 통한 식량 조달도 어려워졌다. 자연히 스파르타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과 양극화로 인해 분열과 대규모 기아 사태에 직면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장점인 강력한 중장보병 양성도 어렵게 됐다. 이는 당연히 군사력 약화로 이어졌고, 그 이후로도 스파르타의 국력은 두 번 다시 코린토스 전쟁 이전의 상태를 넘어서지 못했다.[* 현대도 그렇지만 국가의 역량 자체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고대의 [[도시국가]]는 아무리 군사 훈련에만 몰두하는 [[인간흉기]]들이 모인 국가라 해도 충분한 농업 생산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즉 [[농촌]]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무역과 해운이 농업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발달한 것도 아니었다. 이처럼 메세니아의 생산력이 스파르타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메세니아를 상실한 스파르타는 다시는 이전의 위상을 누릴 수 없었다.] 이후로 자체적인 개혁과 제2계층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국력을 회복했지만 메세니아와 코린도스가 떨어져나간 이상 한계가 명확했고, 때문에 스파르타는 마케도니아와 로마가 각각 그리스 전역을 제패하기 이전까지 수백 년 간 메세니아를 다시 정복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메세니아의 강력한 저항으로 모두 실패했다. 특히 메세니아는 스파르타에 쌓였던 원한이 워낙 컸던 터라 독립 이후에는 로마에 병합되기 전까지 계속 스파르타를 적대하며 스파르타가 참여하는 동맹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메세니아의 독립 후에도 헤일로타이 계급은 잔존하였는데 메세니아는 해방되었지만 라코니아는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메세니아가 해방돼서 스파르타가 몰락했다기 보다는 라코니아라도 남았기 때문에 스파르타가 국체라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