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파르타 (문단 편집) === 정치 === [include(틀:역대 스파르타 국왕)]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스파르타의_정체체제.jpg|width=100%]]}}} || || '''{{{#fff 스파르타의 정치 체제}}}''' || [[스파르타식 교육]]에 가려지긴 했지만, 오히려 이쪽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흔히 [[아테네 민주주의|아테네의 민주정]]과 비교되어 스파르타는 [[과두정]]이라고 설명되고, 실제로 스파르타인 스스로도 [[민주정]]이라 자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는 비교적 많은(최소한 당대의 국가 치고는 높은 비율의) [[인민]]들의 정치 참여가 유도되면서도 높은 안정성을 지닌 체제였다. 스파르타의 권력은 크게 3가지로 쪼개져 있었는데, '[[왕]]과 집정관', '[[원로원(동음이의어)|원로원]]', '민회'가 그것이다. 왕은 그 자신부터가 원로원의 일원이며, 특이하게도 2개의 왕가에서 2명의 왕이 뽑힌다. 따라서 서로를 견제하게 되어 [[참주정]]으로의 폭주를 막는다. 왕의 권한은 민회에서 뽑히는 다섯 명의 집정관(에포로이)에게 견제되다가, 시대가 지나면서 차츰차츰 집정관에게 권력이 넘어간다. 원로원은 실질적으로 가장 발언력이 강하던 곳으로, 민회에서 종신직으로 뽑힌 60세 이상의 의원 30명으로 구성된다. 예외는 그 자신부터가 의원인 왕들이다. 민회는 법안을 인준, 거부, 동맹, 전쟁 선포, 조약 체결을 결정하는 곳으로, 원로원 의원을 선출하며, 매년 집정관을 뽑는다. 이렇게 하여 스파르타는 [[왕정]]의 요소(왕과 집정관), [[귀족정]]의 요소(원로원), 민주정의 요소(민회)가 혼합되어 서로를 견제할 수 있게 되어, 인민의 정치 참여와 정치적 안정성을 동시에 갖추게 되었다. 물론 [[고대 아테네|아테네]]에 비하면 인민의 정치 참여는 떨어졌지만, 후대의 [[로마인]]들도 스파르타와 유사한 혼합정 체제로 '안정성'과 '인민의 정치 참여'를 모두 누린 것을 본다면, 스파르타의 체제는 결코 무시당할 성질의 것이 못 된다.[* 당장에 [[고대 그리스|그리스권]]만 벗어나면 닥치고 복종이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42918.html|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