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파르타 (문단 편집) === 여성들 === 군복무를 하지 않았고 가정을 지킨다는 이유로 역할이 다르다고 해서 신체 단련을 극한까지 하지는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스파르타 여자들 역시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전사를 낳아 나라에 바치는 것이 의무였으며'''[* 이런 이유로 스파르타에서는 아이를 낳다 죽은 여성은 전쟁터에 나갔다 전사한 군인과 똑같은 예우를 받았다. 스파르타 못지않게 [[상무정신]]이 강했던 [[아즈텍 제국]]에서도 아이를 낳다 죽은 여성은 여신으로 숭배를 받으며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또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서 신체 단련을 할 의무가 있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Bronze_Statuette_of_Athletic_Spartan_Girl|스파르타 여성을 묘사한 청동상]]을 보면, 남자 운동선수 같은 [[전라#s-2]]가 아니라, 짧은 치마 차림이다. 사실, 그리스어 γυμνός는 한국어의 '벌거벗은'이나 영어의 naked보다 의미범위가 넓다.] 이렇게 운동으로 단련된 덕인지 스파르타 여성들은 미인으로 유명했다. 여자들의 신체 단련은 첫 아이를 얻거나 폐경이 될 때까지만 의무였다. 그 다음엔 자유. 여자아이들이 입는 옷은 매우 짧았다. '페플로스'란 옷은 엉덩이를 간신히 덮을 만한 높이에 몸을 한바퀴 두를 수 있는 너비의 장방형 천 한 조각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 옷을 입는 방법은 자신의 왼쪽어깨로 팔을 뺀 다음, 오른쪽 어깨 부분에 옷 양쪽을 이어서 매듭을 짓고 나머지 부분은 허리띠로 묶어 고정시키는 식이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오른쪽 부분은 가슴부터 허리까지 노출되는 것. 당시 그리스인의 의복은 거의 이런 식이었는데, 페플로스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단순하고 짧았던 것.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e/Doric_Chiton.svg/800px-Doric_Chiton.svg.png?width=600|여성들의 의상(노출이 있으니 후방주의)]] 이 옷은 그나마 상당히 긴 편이다. 노출이 심한 것은 상단은 가슴, 하단은 허벅지에서 놀 정도로 짧다. 아테네인들이 스파르타 문화에서 가장 기겁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테네에서는 여자들을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꽁꽁 가둬두고 있는데, 스파르타에서는 숫제 거의 다 벗고 길거리에서 돌아다니고 있으니.[* 플라톤의 《국가론》에도 '여자도 운동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기야 하지만, 여자가 허벅지를 드러내고 남자들과 함께 운동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우스꽝스럽기는 하다'라는 주장이 나온다. 당대 아테네인들의 여성의 노출에 대한 사회통념을 반영하는 발언일 것이다. 그나마 플라톤은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워보여도 적응되면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니 여자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말한거고, 여성 교육을 주장하는 등 당시 아테네 사회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성관념의 소유자였는데도 이러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안 봐도 뻔할 것이다. [[300(영화)|영화 300]]의 영향으로 스파르타의 남성들은 팬티만 입고 망토만 걸치고 돌아다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스파르타의 남성들도 천으로 된 옷을 입었고 전시에는 갑옷도 착용했다.] 남자들은 군에 종속돼 살아가기 때문에 스파르타의 여자들은 [[고대 그리스]] 기준으로는 상당한 자유를 보장받았다. 아테네는 물론 다른 그리스 국가들의 경우 부인은 물론이고 특히 미혼 여성은 종교 축제일이나 장보기 아니면 집 밖으로 나올 수 없었지만, 스파르타에선 여자들이 마음대로 바깥에 돌아다닐 뿐만 아니라 운동 경기도 할 수 있었다. [[에드가 드가]]의 [[http://artmight.com/albums/artists/edgar-degas/The-Young-Spartans-1860-National-Gallery-London-England.jpg|소년들에게 도전하는 소녀들(Petites filles spartiates provoquant des garçons)]]이 그런 상황을 묘사(상상)한 것. 사회가 이렇게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편이다 보니 여성의 발언권도 아테네 등 완전히 시궁창인 나라들과 비교하면 큰 편이었다. 참정권을 비롯해 몇 가지 제한은 있었지만 이것도 언제까지나 여성이라서 제한된 게 아니라 군복무를 하지 못해서 제한된 것이었다.[* 스파르타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민의 기준을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국민'으로 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들이 여성들 사이의 평판에 흠이 갈까 무척 노력했다고 한다. 사회적 영향력은 동시대 다른 폴리스 여성들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고 봐야 한다. 일부러 잘못한 남성이 있으면 그에 대한 처벌로 여자들 사이에 세워 놓고 수치스러운 놀림을 듣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마초적 사회다 보니 꽤나 수치스러웠을 것.[* 여담이지만, 인간과 공동조상에서 갈라진 침팬지도 연구에 의하면 집단의 우두머리 자체는 수컷이지만 암컷들에게 평판이 좋지 못하면 자리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스파르타 여성들의 결혼 적령기는 성적 완숙기가 시작되는 18세부터였다고 추측된다. 이는 아테네 등 다른 그리스 국가들의 여성이 14세부터 결혼을 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스파르타인에게 결혼이란 가족과 가족, 재산과 재산의 결합이 아니라 건강한 시민(아기)를 낳을 수 있는 남녀의 결합이었기 때문. 임신과 출산을 시도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고 나서 결혼을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간주되었던 듯하다. 결혼은 약탈혼/납치혼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현대적인 의미의 납치라기보다는 양측의 암묵적 동의하에 신랑이 신부를 몰래 취하는 형식을 띠고 있었다. 신부가 머리를 바싹 깎고 남자 옷을 입은 채로 어두운 방 안에서 기다리면, 밤에 남자가 방으로 들어와 신부의 허리띠를 풀고 신부를 안았다. 볼 일을 다 보면 신랑은 다시 막사로 돌아가고, 이후 낮에 신부를 신부 가족의 집에 데려다 주어 결혼을 완성했다고 한다. 결혼을 한 후에도 신랑 신부가 붙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야 하는 스파르타 남자에게 가정은 잠깐 들르는 곳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거처는 군대 막사였기 때문이다. 국왕이라도 예외는 아니라, 왕비가 아닌 자기 조원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다. 스파르타에서도 부부가 가끔씩만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부부가 가끔씩만 동침해야 아이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보았기 때문. 반대로 잦은 성생활은 군인의 기력을 크게 떨어뜨린다고 간주하여 일부러 집에 안 보내는 것도 있었다.[* 허나 웃프게도 현대에는 오히려 성생활이 잦은 편이어야 아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스파르타인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던 셈.] 얼핏 보면 무정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제도가 사회를 안정화시키는데 도움이 됐는데, 우선 혼기가 차면 결혼을 하니 생계는 보장이 된다. 그리고 안 맞는 부부 사이라고 해도 젊은 시절엔 배우자를 자주 보지 않아도 되므로 결혼 생활을 참아줄 수 있었다. 나이들면 같이 살아야 하지만 당대에는 평균 수명이 짧고 스파르타 특성상 남성들은 항상 전사 노릇을 하다 보니 평시에도 더 험하게 살아서 보통 병역이 끝나기 전에 [[돌연사|골로 가는 일]]이 많고, 운 좋게 만기를 맞았다고 해도 얼마 안 가서 [[죽음|영원히 볼 일이 없게 되니까]] 머지않아 해방이라는 생각으로 참아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날 서로 안 맞는 부부가 각방 쓰면서 혼인 관계만 유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파르타 사회가 극도로 남성적이면서도 의외로 남녀 모두 큰 반발 없이 안정적이었던 이유로 이 제도를 꼽는 사람들도 있다. 덤으로, 나이가 많아 제대로 부인을 상대할 수 없는 전사는 젊고 강한 전사를 [[씨내리]]로 삼아 아내와 동침하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도 명목은 튼튼한 아들을 얻기 위해서이지만 [[성욕]]충족 목적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몰래 [[간통]]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높다. 선술했듯 스파르타의 결혼 방식 자체가 남편이 집에 없을 때는 신부를 통제할 수 없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어찌 됐건 스파르타 남녀는 사회 참여 능력만 충분하다면 결혼 및 출산이 보장됐다. 여성이 16살이 되도록 초경을 못하거나 기준보다 유방이 작거나 [[불임]]이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스파르타 여성의 의무는 전사를 낳는 모체[* 열등하지 않은 전사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을 거의 마음대로 임신시킬 수 있었으며 우수한 전사라면 이는 남편에게도 영광이었다.]가 되는 것이었다. 스파르타의 여성들이 남성들과 비슷하게 운동하고 자유로이 외출하며 발언권도 가질 수 있던 것은, '''건강한 모체에서 건강한 아들(=전사)이 태어나므로 여자 역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체를 단련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사회 전체가 군대를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역설적으로 남녀 모두 '평등'하게 국가와 군대의 부품으로 취급받았던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