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파르타 (문단 편집) === [[페르시아 전쟁]] === 스파르타가 후세까지 이름이 남은 이유는 [[페르시아 전쟁]] 중에서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가 이후 그리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에서 군인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정작 전투 자체는 그냥 사흘을, 유명한 스파르타 300명+1000명의 군대로는 몇 시간밖에 버티지 못한 국지전에 불과했다. 거기에 [[레오니다스 1세]]가 끌고 간 300명은 대를 이을 자녀가 있는 전사들이었는데, 스파르타의 특성상 그 정도로 오래 살아남은 전사들은 대부분 지휘관급 장교들이다. 이 때문인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스파르타는 이후 별 활약을 못해, 테르모필레에서 살아 돌아온 스파르타 군인 아리스토데모스가 온갖 왕따를 당하면서도 1년 넘게 큰 전투가 없어서 싸우지도 못했다. 스파르타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바로 [[플라타이아이 전투]]로, 그리스 본토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스파르타가 주도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군이 주력이 된 그리스군은 페르시아군을 크게 물리치며 페르시아를 내쫓는 데 성공했다. 스파르타의 페르시아 전쟁은 여기서 마무리가 된다. 이후 아테네는 이오니아해와 에게해 등에서 세력 확장을 위해 페르시아와 추가적인 전쟁을 벌였지만, 스파르타는 소극적으로 나서며 손을 뗐다. 그래도 왕이 무리수로 죽었다는 사실과, 막판 숟가락 얹기에 성공한 스파르타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와 공적을 나란히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