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황제 (문단 편집) == 개요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시황제 영정.jpg|width=300]]}}} || [[진(영성)|진(秦)나라]]의 제31대 [[국군]]이자 제6대 [[왕]]이며 [[중화]]라는 인식을 처음 남긴 진(秦) 제국과 [[중화제국]](中華帝國)의 첫 번째 '''[[황제]](皇帝, Emperor)'''로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으며, [[황제]]라는 직위명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다. 스스로를 첫 번째 황제라는 뜻의 '''시황제'''로 자칭했는데, 진나라의 첫 황제라는 의미로 '''진시황제'''라 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연, 조, 위, 제, 한, 초 6국을 멸망시켜 550여 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진(영성)|통일왕조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약 2,000년에 걸쳐 이어진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제|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 인물이었으며, 따라서 중국 역사에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굵직한 흔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중학교, 고등학교 [[세계사(고등학교 과목)|세계사]] 시험에 거의 꼭 나오는 군주이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대업을 이룬 인물이지만 평가가 매우 갈리는데 그 이유는 그의 잘못된 통치로 인해 그가 죽고 불과 3년 정도 만에 통일된 진 제국이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9년]] [[중국|신중국]] 건국 이전에는 기껏 중국을 통일해 놓고도 가혹한 정치로 백성들을 괴롭히다가 진나라의 멸망을 불러일으킨 [[폭군]]이라는 혹평이 주류였으나,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소수민족]]을 묶어두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재평가 흐름도 있다.[* 《[[사기(역사책)|사기]]》도 <진시황 본기>만 번역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중국 최초의 평민 황제이자 사실상 중국의 정치 패러다임을 설립한 [[고제(전한)|유방]]과 [[한나라]]가 오히려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다.] [[대만]]에서도 [[중국 국민당|국민당]]을 지지하는 [[외성인]]들은 비슷한 이유로 진시황에 대한 평가가 괜찮은 편이다. 물론 다른 시각으로 보는 층에선 여전히 엄격한 법치만 내세우다가 망한 [[폭군]] 인상이 더 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