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황제 (문단 편집) == 용모 == [[사마천]]의 《[[사기(역사책)|사기]]》에서 [[울료]]는 시황제의 용모를 가리켜 '코가 높고 눈은 길게 찢어졌으며[* 진나라가 [[서융]]에서 시작된 나라인만큼, [[중화|화하족]]에 동화된 티베트계 [[견융|견융족]]라는 의견도 있다.] 가슴은 매처럼 생기고 목소리는 들개같으며 은혜를 베풀 줄 모르는 사람으로 폭압적 정치를 하는 극악무도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덤으로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나 속으로는 인덕이 부족하고 음험해 승냥이나 이리같은 자"라고 혹평했다. 중국 근대의 학자 곽말약은 그의 저서 《십비판서》(十批判書)에서 "시황제는 초상화와 달리 선천적인 병으로 인해 어렸을 때의 외모가 추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꺼렸으며, 특히 화려함을 좋아했던 어머니에게 거부당한 것이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은, 소질 있는 아이가 타고난 외모와 안 좋은 환경 때문에 비뚤어진 전형적 케이스"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어린 나이에 갑자기 왕이 된 탓에 제대로 된 인간 관계를 배우지 못했을 텐데, 이게 그의 정신적인 성장에 큰 영향을 줘서 다른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한 게 아닌가 그래서 뭔가 이루는 것에 집착하게 되어 중국 통일을 이루거나, 만리장성 축조 등 큰 규모의 건축을 계획하게 된 거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시황제의 비정상적인 외모와 말년에 보인 정신착란 증세가 사실 심각한 뇌 손상이 가져온 결과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수은]]은 소량 섭취시 일시적으로 피부가 팽팽해지는 효과가 있어 시황제는 이를 불로장생 약으로 믿게 되어 매일같이 수은을 먹고, 발라서 결국 수은 중독에 이르렀으며, 거기에 수은은 금단 증상까지 있어서 결국 시황제는 수은을 더 많이, 더 자주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데 이런 수은 중독에 과로까지 겹쳤는데도 50대 넘기 직전인 49세까지 살았다.[* 증조 할아버지 소양왕이 70세 넘게 산 걸 보아, 수은을 안 마셨으면 꽤 장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죽어서도 진시황릉에 수은으로 만든 강을 만들어 넣었다고 한다.[* 출처 : 《사기》 <진시황 본기>.] 현재 [[진시황릉]]의 토지 수은 농도가 다른 곳보다 월등하게 높아서 실제로 다량의 수은이 묻혔을 것으로 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