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황제/생애 (문단 편집) === 출생과 어린 시절 === 기원전 259년 정월(음력 1월 15일)에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장양왕|영이인]][* 훗날 장양왕]과 [[조희(전국시대)|조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시황제의 아버지 영이인은 진나라의 태자[* 왕위 계승자]가 된 [[효문왕|안국군 영주(嬴柱)]]의 아들이었지만, [[서자]]라서 보잘 것 없는 대접을 받고 [[장평대전]] 이전에 조나라의 인질로 끌려갔다.[* 다만 안국군의 정처인 화양부인은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안국군의 자식은 다 서자였다. 즉 이인은 그의 어머니가 안국군의 총애를 얻지 못해서 대접이 별로였던 것.] 그러던 중 당시 사업차 [[한단]]에 와 있던 거상 [[여불위]]의 주목을 끌어 후원을 받으며 안국군의 정부인인 화양부인을 포섭해 안국군의 후계자가 되기로 약속을 받는다. 얼마 뒤 영이인은 여불위의 집에서 [[조희(전국시대)|조희]]를 만나게 되었고, 여불위에게 부탁해 조희를 얻었다. 그리고 영이인과 조희 사이에서 자녀가 생기게 되었고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바로 시황제인 '정'이었다. 기원전 257년, 정이 3살 때 증조할아버지이자 진나라의 명군인 [[소양왕]] 영직이 장군 [[왕흘|왕의]](王齮)를 보내 장평대전 때 함락시키지 못했던 조나라 수도 한단을 포위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조나라의 [[조효성왕|효성왕]]은 진나라의 인질인 영이인을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나, 여불위가 600금을 뇌물로 써가며 아버지 영이인만 간신히 구출했다. 정과 어머니 조희는 한단에서 탈출하지 못했지만, 조희가 조나라의 호족 집안 출신이라 간신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한편 어린 시절 정은 연나라에서 볼모로 온 세자 연단과 친하게 지냈는데[* 출처 - 사마천, 《사기》 <자객 열전>] 이때 친분을 계기로 연단은 정이 진왕이 된 후 진나라의 볼모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사이가 틀어져서 탈출하기에 이른다. 기원전 251년 정이 9살 때 증조부 [[소양왕]]이 죽고, 할아버지 안국군이 [[효문왕]]으로 즉위하자, 아버지 영자초[* 자초(子楚)는 초나라의 아들이란 뜻. 영이인은 진나라로 돌아간 뒤 화양부인의 권유로 자초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는데, 화양부인은 초나라 출신이었다. 여불위의 책략으로 영이인은 화양부인을 어머니 모시듯 끔찍이 아꼈고, 이에 감동한 화양부인이 이름을 새로 내려 준 것이었다.]도 과거 약조대로 태자가 되었고, 조나라도 태자에 오른 영자초를 두려워해서 그의 가족인 조희와 정을 진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효문왕이 즉위한 지 3일 만에 병사하고, 태자 영자초가 진나라의 장양왕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정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진나라의 후계자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자초의 후원자였던 여불위는 승상이 되어서 강력한 권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