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흥지구전투사령부 (문단 편집) === 6월 29일 === [[맥아더]] 장군이 한강선을 시찰했다. 29일 아침에 수원비행장에 착륙한 바탄에서 내린 맥아더 장군은 수원농업학교에 설치된 ASCOM(미 전방지휘소)에 들른 후 수원국민학교에 설치된 육군본부에 가 채병덕의 보고를 듣고 나서 직접 한강선에 갔으나 엄청난 포격으로 인하여 동양맥주공장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김홍일 장군의 방어작전계획을 듣고 감탄했으며, 그곳에서 그 유명한 한국군 중사의 결의를 듣고 나서 도쿄로 귀환했다. 그 직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연합군 점령 일본 통치 기구. 1950년 7월 7일 도쿄에서 창설된 6.25의 연합군(UN군) 사령부와 다름.)에서 본국과의 극비 텔레타이프 회의(타이퍼는 타자기. A와 B가 텔레타잎을 쓴다면 A에서 메세지를 타이프로 쓰면 무선으로 정보가 상대의 기계로 가서 영사기로 상영되고 똑같은 방법으로 대답.)를 통해 일본의 안전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주일미군의 파병을 허가하였다. 맥아더 장군은 또한 이날 낮 이승만 대통령에게 현재까지의 패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어 그를 해임했고 후임으로는 그날 미국에서 귀환한 채병덕 총장의 후배인 정일권 소장을 임명하였다. 이 명령은 30일 0시 효력을 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