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경숙 (문단 편집) === 엄마를 부탁해의 시도: 2인칭 서술 === 엄마를 부탁해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은 큰딸의 시점, 장남의 시점, 아빠의 시점, 엄마의 시점을 거쳐 큰딸의 시점을 취하는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소설과 다르게 서술자가 ‘너’ ‘당신’등과 같은 2인칭 대명사를 사용해 극중 인물을 호명한다. 원칙적으로 서술시점을 구분할 때 서술자가 작품 내 사건에 존재하는 경우를 1인칭, 그렇지 않은 경우를 3인칭으로 구분하지만[* 본 위키의 [[소설의 시점#s-3.3|해당 항목]]도 이와 같은 견해를 존중한다.]. 극중 인물을 호명하는 대명사가 달라진 것이 사실 이 소설의 서술 논리를 구성한다. 상당수 독자들이 마치 '자기 자신을 소설이 심판하는 것과 같은 죄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는 대명사의 위치에 독자가 자기 자신을 대입할 수 있도록 2인칭 대명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홍수 문학평론가가 '엄마를 부탁해'를 해설한 <[[피에타]] 그 영원한 귀환>을 인용한다. >그녀는 이제,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가족노동의 무한 대리인도 아니며 가족을 향한 마르지 않는 사랑의 화수분도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자신의 고독과 수고를 몰라준 가족들을 향한 문책은 없다. “나는 몇 해 전에 세워 놓은 선산의 가묘로는 안 갈라요.(....) 오십년도 넘게 이 집서 살았응게 인자는 날 쫌 놔주시오.” 한 가족의 엄마로만 살아온 세월에 대한 착잡한 회한을 토로하는 대목에서 그 문책의 기미를 우회적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다다. >그러니까 엄마에겐 가족들을 불러내 그 이들의 무심함을 질책할 마음이 처음부터 없다. 오히려 장남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2장의 제목이 ‘미안하다. 에 자각적이었다. >그러므로 엄마의 음성이 그 문책의 시선으로 소설의 표면에 노출되지 않은 것은 단지 형식적인 소설적 장치의 문제일 수 없다. 그 호명과 문책의 시선은 엄마의 몫이되, 엄마가 그 몫을 거절함으로써 텅 비어버린 자리였던 것이다. 그 호명이 생성되는 빈자리를 두고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거나 신의 시선이라 쉽게 말하기 힘든 것도 그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