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라/후삼국시대 (문단 편집) == 영토 == ||[[파일:나말여초(927).png|width=100%]]|| || [[927년]] 후기 신라의 판도 ||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역사 책이나 현행 역사교과서에서 실려있는 [[후삼국시대]] 당시를 그린 한반도 지도에서는 보통 [[신라]]가 통일 이전 영토 정도를 갖고 있는 걸로 그려지지만 그건 후고구려와 후백제가 막 생겼을 때의 일이다. 후삼국시대 시기별로도 꽤 차이가 나는데, 우선 [[경상도]]를 다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대강 지금의 [[경상남도]] 대부분 지역과 경상북도 서쪽 절반은 후삼국시대 초기부터 [[신라]] 조정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울산광역시|울산]] 지역에는 호족 박윤웅이 반독립상태였고 [[김해시|김해]]의 김인광은 [[가야]]의 부활을 기도했으며 [[진주시|진주]]의 [[왕봉규]]는 아예 [[중국]]에 독자적으로 [[조공]]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붉은 [[바지]]를 입은 [[도적]]떼 [[적고적]]의 거점도 있었으니 경남 지역은 전부 사실상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다만 김인광 세력은 지나치게 독립노선을 걷다가 [[소충자]] [[소율희]] 형제에게 밀려났고, 소씨 형제는 신라 조정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남쪽은 다시 신라 세력권에 들었다.] 다만 옛 가야 영역인 경남은 그렇다 쳐도, 경북 서북부가 고려에게, 경북 서남부는 후백제에게 꽤 일찍부터 이탈하고만 건 상당한 치명타였다. 경북 서북부는 그나마 광개토대왕-장수왕 시기의 '고려'가 50년 동안 실효지배했던 과거가 있고 이후에도 한동안은 신라 왕실로부터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은 바 있으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신라 융성기의 기틀을 다진 자비 마립간-소지 마립간-지증왕이 역시 50년 동안의 적지 않은 세월, 인력, 물자를 기울여서 거의 왕실 직할령 수준으로 키워놓았던 경북 서남부가 후백제에게 넘어간 건 매우 의아한 결과. 경북 서남부 같은 경우 고구려는 물론이고 백제도 거의 넘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데다, 나당 전쟁 시절에도 뚫린 적이 없었다. 견훤이 아무리 명장이었어도 신생국 후백제가 군사력만으로 그걸 얻어냈다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사실 김헌창 때도 해당 지역은 생각보다 쉽게 중앙으로부터 이반했던 만큼, 견훤도 비슷한 수법을 썼을 거라고 짐작은 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후백제]]의 공격을 막을 요충지 [[대야성]]과 동해로 통하는 경북 지역은 그나마 신라의 충신들이 남아있어 후백제의 공격을 수 차례나 자력으로 막아내고 왕건에게 원군을 보내기도 할 정도로 아직 완전히 영향력이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후백제에게 920년 대야성이, 927년에 서라벌이 함락당하고 [[경애왕]]이 살해당하는 과정을 거쳐, 우호적인 세력들도 궤멸당하거나 고려와 후백제에 줄지어 항복한다. 이후로는 [[후백제]]나 [[고려]]나 [[신라]]를 어느 정도 대우하며 10여년 정도 그래로 두었다가 고려의 압박으로 고려에 투항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사실 경애왕 시절에도 지금의 영천인 고울부가 고려에 귀순을 청할 정도로 엉망이긴 했고, 경순왕 때는 그나마 명목상 받던 상전 대우도 완전히 사라져 귀부 이전에도 고려대왕 왕건을 모시는 신하로 사실상 격하되고 만다. 견훤에게 경남 합천의 [[대야성]]을 잃고, 고려와 후백제의 미묘한 균형이 [[고창 전투]](930) 이후 [[안동시|안동]] 주변부까지 [[고려]] 땅이 되면서 깨진 후, 즉 멸망까지 약 5년 정도의 기간 동안에는 신라의 영토가 신라 건국 초기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삼국사기]]만 봐도 [[태조(고려)|왕건]]이 직접 일어진으로 행차해 성을 쌓고, [[경순왕]]은 경주와 그 주변만 겨우 다스린다고 할 정도였다. 일어진은 지금의 [[포항시|포항]]으로, [[경주시]]에서 차로 30분이면 간다. 고려군이 맘만 먹는다면 대군을 이끌고 바로 오늘이라도 내 눈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말 그대로 내 앞마당까지 남의 땅이 된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