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라/후삼국시대 (문단 편집) == 정치 == [[오대십국시대|여느]] [[발해|나라들의]] [[헤이안 시대|말기가]] 그렇듯 상당히 혼란했다. 나라가 무너지는 시기에 [[진성여왕]]과 [[효공왕]]은 기록상 사치향락을 계속했으며, 이후 박경휘가 [[신덕왕]]으로 즉위하면서 이후 8대 [[아달라 이사금]] 이후 728년만에 [[박씨]] 왕조가 부활했다. 다만 단순히 박 VS 김으로만 보는 건 단견이다. 신덕왕은 [[헌강왕]]의 사위로서 즉위한 것이지 수백 년전 죽은 아달라 이사금의 원손으로서 즉위한 건 아니었으며, 신라는 사위에게도 왕위 계승권이 분명히 있었다. 918년에는 김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김현승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모든 김씨가 김현승의 의견에 일치단결했다면 경명왕이든 경애왕이든 왕위 유지는 불가능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였으니, 어느 정도 정치적 식견과 능력이 있음을 입증한 경명왕과 경애왕의 존재를 당시 신라 귀족 사회가 대체로 승인하고 국론을 모은 것이다. 특히 박씨 왕조의 마지막 왕 [[경애왕]]은 [[포석정]]의 삽질로 암군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정황상 균형외교를 하면서 나름대로 망해가는 국운을 살려보려고 애썼던 왕으로 재평가받는 편이다. [[경애왕]] 문서 참조. [[태조 왕건]] 등 창작물에서는 [[견훤]]의 [[서라벌]] 기습공격도 김씨 일부 [[간신]]들이 왕위를 되찾기 위해 박씨 왕을 해치워달라고 사주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식으로 연출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