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종균 (문단 편집) === 업무 스타일 및 평가 === ‘조용한 CEO’로 통한다. 평소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고 한발 뒤로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꼼꼼한 일 처리만큼은 양보하지 않는다. 휴가도 가지 않고 업무의 3분의 1 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낸다.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의 한 엔지니어는 “삼성전자가 애플을 빠르게 추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종균 사장 특유의 꼼꼼함과 성실함이 있었다”면서 “신종균 사장이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신제품 개발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말했다.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신종균 부회장은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최 전 부회장을 도와 삼성의 휴대폰 1등을 견인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최 전 부회장과는 업무 스타일에서도 서로 잘 통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제품 기술에 대해서 개발자보다 더 많이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해 왔다. 오죽하면 삼성 내에선 신종균 사장보다 휴대전화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어려운 기술 용어도 척척, 구체적인 명령을 내려 부하 직원들의 시행착오를 줄인 것이 업무 효율을 높인 것은 덤. 섬세함의 신이라 불릴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업무를 직접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출시일이 코앞에 다가온 제품도 최고의 수준이 아니면 원점으로 돌이키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알려졌다. 또한, 집념과 끈기의 대명사다. 그의 집념을 바로 말해주는 일화는 많다. 1984년 삼성전자 입사 전까지 외국인과 한 번도 대화하지 못한 영어 초보자였으나 이후 독학으로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단 앞에서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올린 일화는 유명하다. 젊은 시절 잠 한숨 안 자고 무려 72시간 동안 제품 개발에 몰두해 모두를 놀라게 하였으며, 1993년 삼성전자가 처음 정보통신 부문을 만들어 본격적인 해외 영업을 시작했을 당시 각국의 [[통신회사]]를 누비며 담당자를 찾아가 읍소했던 일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2009년 애플 쇼크로 업계가 요동쳤을 때 그해 9월부터 2010년 4월까지 갤럭시 S를 만들어내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1만 건이 넘는 소비자 사용 행태를 모두 분석하고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직접 구동시켰다는 후문이다. 잠도 자지 않고 주말도 없이 일에만 매진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