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진사대부 (문단 편집) == 등장 == 사대부 계층의 기원으로 흔히 말하는 것이 능문능리(能文能吏) 관인층이다. [[무신정권]]시기 무신만으로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므로 [[최우]]가 만든 서방을 통해 관인층([[이규보]], 최자 등)이 등용되었다. 이렇게 등용된 관인층은 무신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대접받았고 무신들보다 더 대접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관인층은 원간섭기 오히려 권문세족으로 발전하였으며 성리학과도 전혀 무관한 계층이었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뿌리로 보기는 어렵다. 원 간섭기 [[충선왕]]이 [[대도#s-4|대도]]에 [[만권당]]을 세우면서 본격적으로 성리학이 중국에서 주류 유학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고 이때 고려의 많은 선비들이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과거를 통해 정계에 진입하고 나서도 크게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지는 못했다. [[안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고려 왕실이 추진하는 여러 개혁정치에 참가하며 힘을 키우기도 했으나 그 개혁은 대부분 전왕의 측근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권문세족 내부의 권력다툼인 경우가 많았다. 신진사대부라는 계층이 정치 세력으로써 만들어진 시기는 [[공민왕]] 시기가 되겠다. 공민왕은 권문세족을 숙청하면서 그 반대급부의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고, 특히 노국대장공주 죽음 이후 슬픔에 빠진 공민왕은 신돈에게 전권을 맡기게 되면서 신돈은 개혁의 일환으로 사대부들을 대거 등용한다. 그 덕분에 [[이색(고려)|이색]]을 비롯한 [[성리학]]에 밝은 관리들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새롭게 등장한 사대부'라는 뜻에서 '신진사대부'라 불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