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흥군 (문단 편집) == 역사 == [[옥저]]의 일부였고 [[고구려]]에 복속,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고 이후 [[발해]]의 영역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여진족]]의 영역이었다 [[공민왕]] 시기에 고려의 영토로 편입됐다. [[조선]]시대의 경우 이 일대에 독립된 행정구역은 없고 함흥과 홍원, 장진의 일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1914년 [[일본 제국|일제]]가 [[부군면 통폐합]]을 하면서 함흥군 6개 면, [[홍원군]] 2개 면, [[장진군]] 동상면을 분리 통합하여 신흥군을 신설하였다. 신흥군이라는 이름은 '''새로운(新)''' 함'''흥(興)'''이라는 뜻이다(…). 동일한 작명 방식에 의해 명명된 곳은, [[전라남도]]의 [[신안군]]('''새로운 [[무안군|무안]]''')이 있다. 3개 군에서 영역을 받았다는 점에서 얼핏 보면 만행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 홍원군이었던 지역은 홍원의 다른 지역과는 산줄기로 가로막혀있기 때문에 신흥군으로 넣는 게 더 자연스럽다. [[부전령]] 이북을 편입한 건 만행에 가깝긴 하지만. 일제가 신흥군을 신설한 이유는 너무 넓은 [[함흥]]의 행정구역을 조정하고 부전고원의 풍부한 수자원과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편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목적으로 1926년 [[부전강]]이 흐르는 동상면 한대리에 부전강댐을 건설하기 시작해 1929년 부전강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 1931년 부전강[[수력발전소]]가 완공되어 연간 20만 kW의 전력을 신흥군 남쪽 함흥과 흥남 일대에 조성한 공업지대로 송전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인공호수 [[부전호]]와 군내에 부설된 [[신흥선]]을 활용한 부전고원 일대의 개발로 인해 인구가 크게 늘어 1918년 3만 8,654명에서 1936년 9만 4,154명까지 늘었다. 1952년 북한 행정구역 개편 때 신설된 [[부전군]]에 신흥군 영고면, 상원천면, 하원천면, 동상면을 넘겨줬고, 1954년에 10개 리를 영광군(당시 오로군)에 넘겨줘 면적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1954년 11월 부전군의 [[부전령]] 이남 16개 리를 돌려받아 현재와 같이 부전령을 경계로 두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